더...블...비...전... 상당히 장 끌로드 반담스러운 영화 제목이라 아니 할 수 없는 사자 영어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는 할리우드 배우와 홍콩. 대만. 중국 인력들이 뒤섞여 제작됐다. 하지만 여기까지 뿐이다. <더블 비전>은 끌로드의 발차기 하나로 모든 게 쾌도난마식으로 진행되는 그의 영화와는 정 반대로 상당히 복잡다단한 심리로 얽히고설킨 호러.액션.스릴러 극이다.
영화는 자본의 소비지상주의가 대지를 서서히 뒤덮는 대만의 풍경과는 상관없이, 무거운 어둠만이 사위에 둘러싸인 타이페이에서 발생하는 연쇄살인을 축으로 진행된다. 대기업 회장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졸다가 돌아가신 사인이 빵빵한 난방시스템에도 불구하고 얼음장 같은 물 속에 빠져 죽은 것과 같은 익사로 밝혀지고, 웃으면서 죽은 희생자도 발견된다. 오만함으로 똘똘 뭉친 현재의 의술조차도 이 초자연적인 기이한 살인 사건 앞에서는 레지던트 1년차일 뿐.
초반부터 보여주는 그로테스크한 시체들과 동공이 네 개나 되는 영적인 존재, 그리고 사이비 종교 광신도들과의 잔혹한 결투 씬 등은 분명 충격적이다. 특히 좀비와 같은 사이비 교도들과 동네 구멍가게 아저씨 같은 경찰이 지독스러운 혼전을 펼칠 때는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다.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황혼에서 새벽까지>와 일본 V시네마의 거장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들이 겹쳐질 정도이다. 이런 뜨악스러운 순간순간을 생각해보자면 영화는 호러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연쇄살인의 정체가 갈수록 묘연해지고, 수사가 진행되는 방식에 영화가 점점 더 골몰하기 때문에 <더블 비전>은 범죄 스릴러 장르로 더 강하게 와 닿는다. 데이빗 핀처의 <세븐>이 사악한 존재의 거동을 성서에서 찾듯, <더블 비전>은 도교와 관련된 문헌에서 단서를 잡아낸다. 그러기에 스릴러적인 기운이 더 확연히 감지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얘기가 종반부 전까지다. 영화는 초현실적인 존재들과 아귀다툼을 해서 지쳤는지 후반으로 치달으면서 지금까지 버겁게 쌓아왔던 긴장감 충만한 이야기나 장면을 지키지 못하고 하나 둘 스스로 허물어뜨리기 시작한다. 황 형사의 가슴 아픈 가족 이야기가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함과 동시에 감독 첸 쿠오프는 리히터 요원으로 대변되는 과학적 논리 대신 동양적 신비감과 직관에 더 의존하려는 의지를 후반부에 명백히 노출시킨다. 때문에 <더블 비전>은 갈수록 비틀거림이 더 심해지며 끝내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종잡기가 힘들어진다. 감독의 의도라면 할 말 없지만, 문제는 왜? 종잡을 수 없는지 그리 궁금하지 않다는 데 있다.
앞으로 홍콩 쪽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영화는 더 이상 사자성어나 사자영어를 쓰지 않았으면 한다. 논리적인 이유야 될 수 없지만 필자의 직관으로는 더 이상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지난날 한국에서 누렸던 그들의 결기 있고 의젓한 영화들이 언젠간 다시금 일어서리라는 믿음에서 하는 말이다.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명불허전(名不虛傳)’
뱀다리: <더블 비전>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상영된 바 있다. 주인공인 양가휘는 게스트로 우리나라를 방문할 예정이었고. 하지만 이 영화로 홍콩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해 오랜 만에 자신의 이름값을 해서 그런지, 그만 그는 한 파티에 참석했다가 집에 귀가 중 음주 운전 및 폭행 혐의로 체포됐다. 그래서 양가휘는 한국 유랑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