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박찬욱의 <공동 경비구역 JSA>가 절대로 깨지지 않을 불패신화라는 <쉬리>의 박스오피스 기록을 무너뜨린 적이 있었다. 당시, 수많은 영화 관계자들은 그러한 전대미문의 현상을 영화 외적인 환경을 통해 설명하려 했다. 우연하게도 영화의 내용과 남북의 화해무드가 잘 맞물려 흥행에 있어 그것이 촉매 역할을 했다는 게 요지이다. 허나,<공동경비구역 JSA>라는 영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에 의해 이루어진 의미 있는 결과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어느 누구 하나 반발하지 못했다. 그만큼 <공동경비구역 JSA>는 대중들을 흡수할 만한 강력한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아우르며 생각해볼 때 <휘파람 공주>는 다소 아쉬움이 많이 남을 영화이다.
영화는 현실에 존재하는 그들에게 가상의 설정을 덧입히면서 시작한다. 북한 최고 지도자의 외동 딸 지은(김현수)은 사람들의 눈을 속이며 평양 예술단의 일원으로 생활해간다. 2000년 봄, 남북 정상 회담을 앞두고 그녀가 소속돼 있는 평양 예술단은 서울 공연에 참가하게 된다. 충남 청양 무당 스타일의 복식을 걸쳐 입고 검무를 남한인민들에게 시연하던 지은은, 행사가 끝난 후 호텔을 탈출, 서울 한 복판으로 나서게 된다.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뒤늦게야 공주마마가 출타한 사실을 안 남북한 요원들은 그녀를 찾아 설레발을 떨며 우왕좌왕한다. 오지랖이 넓어 안 껴도 될 때와 껴도 될 때를 전혀 구분하지 못하는 미국은, 역시나 CIA를 통해 이번 일에도 꼽사리를 낀다.
전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인민답지 않은 지은은 자본주의에 몸을 기대고 사는 강남의 아가씨들과 마찬가지로 구속보다는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싶어 하는 여자이다. 그래서 그녀는 독단적 행동을 감행한 것이다. 그러던 와중 강남의 돈 많은 언니들에게 남자가 잘 붙듯,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를 소지한 지은은 우연하게 만난 얼치기 록 밴드 노펜스로부터 충분한 호기심을 이끌어낸다. 허나, 미팅을 나가던 어딜 가던 항상 초치는 인간이 하나쯤은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의 풍경. 밴드의 리더 준호(지성)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남한 요원 대표(박상민)와 북한 대표(성지루)는 지은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같이 뒹굴다보니 미운 정이, 가랑비에 머리 젖어 대머리되듯, 어느 순간 들어버린다. 그럼으로써 미국은 덩치가 덩치인 만큼 2대1로 우리와 맞짱을 겨루게 된다. 그와 동시에 옥신각신하던 지은과 준호도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
영화는 이처럼 이념, 지위, 철책을 넘어, 넘을 게 너무나도 많은 청춘커플의 사랑을 담아내며, 화끈한 액션과 더불어 남북한 요원들의 진한 드라마도 선보이고 있다, 고 표방하고 있다. 맞는 말이긴 하다. 호텔 안에서 벌이는 액션 신은 성지루의 기대 밖의 묵직한 몸동작으로 인해 정말 볼 만하다. 젊은 남녀의 사랑도 그러하다. 이념이 다른 요원들의 우정도 분명 그러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것들이 삼위일체를 이루지 못하고 따로 따로 노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는 것이다. 각 부문이 유기적으로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이유에는 무엇보다 일차적으로 지은이 전혀 휘파람 공주의 북한여자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를 보좌하는 북한요원들은 재벌 집 외동딸을 보호하는 보디가드와 같다는 인상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앉는다. 물론, 남남북녀의 로맨스도 이러한 연유로 인하여 관객들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데에는 다소 버겁다. 현 주류의 대세인 코미디를 의식해서 그런지 상황과 동떨어지거나 오바하는 대사 또한 영화의 자충수(自充手)로 쓰이고 있고.
얼마 전 방문한, 오리지널 휘파람 공주인, 북한의 미녀응원단에게 용암과 같은 뜨거운 환호를 남한의 남자들은 보낸 적 있다. 이 같은 신드롬의 원인에는 정치, 사회, 문화가 뒤섞여 여러 가지 진단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그녀들의 최소한의 미모와 단아한 자태가 이 집단적 현상에 크나큰 몫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시 말해, 작금의 도도한 시대적 흐름에 <휘파람 공주>가 발맞춰 나가기에는 보폭이 작거나 숏다리이거나 아니면 역행으로 행진하고 있기에 힘들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