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와 비밀의 방>과 <반지의 제왕 : 두개의 탑>이 극장가를 완전히 장악했다. 이미 예견된 일이지만 개봉 4일만에 전국 100만 관객을 동원한 괴력에는 역시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일주일 간격으로 공개된 두 작품은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관객 동원력을 보이며 올 겨울 극장가를 후끈 달아오르게 하고 있다. 이 두 작품에 맞서 놀라운 성적을 선보이고 있는 작품이 있었으니 40여년동안 끊이지 않고 새로운 시리즈를 양산해온 <007 어나더데이>가 그 주인공이다.
<해리포터>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밀어 박스오피스 2주간 1위를 차지한 <007 어나더데이>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이 작품이 단지 시리즈의 스무 번째 작품이거나 혹은 역대 시리즈 가운데 가장 높은 흥행수익을 기록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세계 도처에 위치한 악을 응징하고 선을 재창하는 본드의 원맨쇼를 다룬 작품이기에 언제나 같은 작품이 나오겠거니 했던 것이 사실인데, 놀랍게도 이번 작품의 악의 축은 다름아닌 북한으로 설정되었다는 점이 제작 준비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다. 구 소련이 붕괴되고 미국과 양대 산맥을 이루었던 힘겨루기의 상대가 사라진 요즘 007에 대적할 만한 강력한 상대가 북한 밖에 남지 않아서 였을까. 1억 5천만불의 물량을 투입한 이번 작품에서 펼쳐지는 액션은 볼거리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단다.(아직 보지 못했으니 속단은 말자)
북한을 악으로 설정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영화에 대한 불매운동이 국내에서 살짝(!) 일어났다. 그리고 미군 장갑차 사건으로 인해 이 영화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은 최소한 겉으로 보기엔 최악의 상황에 다다랐다. 하지만 그 덕분에 이 작품 <007 어나더데이>는 특별히 광고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언론에 심심치 않게 노출이 되면서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등과 함께 현재 최고의 인지도를 자랑하게 되었다. 그다지 좋은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은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작품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영화사에는 그다지 좋은 소문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홍보와는 별개의 문제라고는 하나 IMF가 터지고 <타이타닉>의 불매운동이 일어났을 당시를 생각한다면 <007 어나더데이> 역시도 이 같은 반응이 흥행 대박으로 이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007 어나더데이>가 보여주는 대한민국의 왜곡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반미감정에 휩쓸려 나쁜 영화라는 딱지가 붙어버리긴 했지만, 이번 작품의 배경이 북한이 아니라면 필시 볼만한 오락영화 즘으로 생각하고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영화를 볼 거란 사실이다. 그간 우리가 알게 모르게 보아온 많은 작품들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그 배경이 참인지 거짓인지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있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할말이 없다. 우리가 이만큼 분노하며 한국문화에 대해 황당하다는 입장을 펼치고 있지만, 이런 목소리를 다른 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전달 될 수 있을까.
아직까지 다른 나라를 배경으로 혹은 비교 대상으로 삼은 한국영화가 없었기에 다행이지 만약 우리나라에서 007같은 작품을 만들고 그 배경으로 우리가 잘 모르는 어딘가를 선택했다면 필시 이런 왜곡이나 오류가 영화 곳곳에 등장했을 것이다. 문화에 대한 몰이해를 통해 우리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는 것은 필시 기분 나쁜 일이지만, 지금까지 다른 영화를 통해 다른 나라에 대해 쉽게 판단해 버렸던 지금까지 인식에 대해 스스로 먼저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이번 007 사건을 비판하기에 앞서 그간 영화를 통해 너무 쉽게 이야기 되었던 것들에 대해 뭔가 의식 갖고 분명히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