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편만 보면, 작품의 완성도가 어떻게 되었든 무척 기대를 갖게 하는 영화들이 있다. 예고편 만으로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 홍보하는데 있어 고민할 필요가 없는 영화. 바로 <엑스 vs 세버>같은 초 절정 액션 영화들의 공통점이다.
<마스크 오브 조로>로 톱 스타의 반열에 올랐건만 그 이후로 계속 주춤하고 있는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미녀 삼총사>에서 동양적인 섹시함을 온몸으로 보여줬던 류시 리우의 만남은 그러나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 한 임무였는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둘 사이에서는 섹시한 기류나 파워풀한 상승 효과는 요만큼도 없다. 영화가 시작함과 동시에 펼쳐지는 현란한 류시 리우의 액션은 전혀 섹시해 보이지도 않고 매력적이지도 않다. 그냥 혼자서 멋있는 척 분위기 있는 척은 다 해대면서 영화 내내 '후까시'만 잡아댄다. 이는 안토니오 반데라스도 별반 다를 것 없다. 아내의 죽음으로 폐인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는 전직 FBI의 얼굴에는 삶의 고뇌와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으며 단지 '저 친구 억지로 어울리지도 않는 옷 입고 있느라 힘들겠다'라는 안스러운 마음만 생길 뿐이다.
첩보영화의 미덕인 긴장감이나 갈등의 구조가 심심하다 보니 극적인 이야기 구성은 어쩌면 처음부터 기대하기 힘들었지도 모를 일이지만, 이 영화 <엑스 vs 세버>는 좀 심했다 싶다. 마치 슈퍼 초인으로 그려지는 엑스와 세버는 수백명이 그들의 총에 죽어나갈 동안 타박상을 입는 것이 전부이다. 세버는 심장에 1센티미터 떨어진 곳에 총탄을 박고, 엑스는 그것이 그녀의 의도된 행위임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아주 만화보다 더 만화 같은(만화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오해 마시길) 어이없음으로 똘똘 뭉친 영화가 <엑스 vs 세버>다.
천재 감독이라 불리며 화려하게 할리우드에 입성한 아시아계 연출자 카오스(이름도 유치찬란하다)는 이 작품을 끝으로 더 이상 할리우드 주류에 편입되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자신이 동양인이라지만 류시 리우가 나올 때 마다 괴이쩍은 여성의 코러스가 깔리는 것은 아주 지겹고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도대체가 무슨 생각으로 할리우드 메이져 영화사가 이다지도 엄청난 물량을 투입해 가면서 이런 시시껄렁한 작품을 만들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영화 보고 나오면서 한마디 했다. "그래, 미국 니네 돈 많다. 이런 영화 만들 돈 있으면 우리나 충무로에 10분의 1만 투자해 봐라. 이것보다 백배 좋은 영화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