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기쁘게, 용감하게 봐주세요. 사랑은 누가 갖다 주는 게 아니라 닫힌 문을 열어야 합니다. 하고 싶은 말을 확확 하고 사세요!’ 금세기의 비겁한 젊은이들에게 피와 살이 되는 일장연설을 하는 무대 위의 신인 배우 일흔 한 살의 이순예 할머니와 일흔 세 살의 박치규 할아버지 커플은 <집으로…>의 김을분 할머니에 이어 <죽어도 좋아>가 낳은 또 하나의 비전문 배우 스타이다. 얄팍한 감성과 열정을 지닌 덜 성숙한 젊은이 무리에 포함되는 필자는 가슴 한 구석에서 뭔가가 울컥 하는 것을 느꼈다. 아직 영화는 시작도 안했는데.
경인방송 다큐멘터리 PD였던 박진표 감독이 제작했던 TV 다큐멘터리 시리즈물 <사랑>의 한 에피소드에서 시작된 <죽어도 좋아>. 참으로 많은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를 돌며 지루한 검열과의 전쟁을 벌인 끝에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펠라치오를 해주는 문제의 그 장면을 어둡게 프린트 색보정 처리를 한 결과, 서슬 푸른 영상물 등급 위원회의 심의에 만장일치로 18세 이상 관람가 판정으로 통과될 수 있었다. 어찌되었든 무삭제로 드디어 일반 관객의 눈에 공개되게 된다니. ‘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라는 카피가 무색하지 않다.
냉수 한 그릇 떠 놓고 올리는 결혼식과 결혼사진 촬영까지 사랑의 형식이 일사천리로 해결된다면 사랑의 내용과 증명이라고 할 수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섹스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길고 진지하며 열정적으로 진행된다. 같이 들어 앉아 목욕을 하며 달콤한 말과 애무를 나누는 고무 다라이 목욕씬, 뮤직비디오의 공중파 방송금지 사태까지 초래한 ‘낯거리’라는 단어와 달력 하나를 가득 메워가는 자랑스러운 사랑의 증표들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거친 숨소리와 몸짓이 담겨진 날 것 그대로의 베드씬들. 영화 엔딩에 ‘청춘가’의 젊은이 버전인 랩 ‘Too Young to Die’가 울려 퍼지는 순간 느꼈던 생경함처럼 일견 당혹감을 주지만 곧 이순예 할머니의 말대로 ‘기쁨과 용감함’이 치솟는다. 우리는 모두 이래야 하는 것인데.
이 부분이 사실 영화 <죽어도 좋아>가 말하고자 하는 바이며 영화가 가지는 힘의 처음이자 끝일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열정적인 사랑'..이라고 해도 이토록 솔직하고도 직선적인 방식으로 두 분의 사랑의 행위를 실시간 관람하게 하지 않았다면 TV의 ‘인간극장’등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노인을 소재로 다루는 것의 차원과 별다를 것이 없었을 것이다. 이 영화가 감동적인 것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과 건강한 성생활까지 모두 다 백 퍼센트 실제 상황이라는 것이다. 포토타임이 벌어지고 있는 무대 위에 이순예 할머니와 박치규 할아버지가 손을 꼭 잡고,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볼에 얼굴을 대고 두 분이 사랑하고 있음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있다. 이들을 누가 막을 수 있을 것인가. 너무 흔해서 싸구려같이 들리겠지만 죽음이 그들을 갈라 놓더라도 그들의 사랑의 빛은 바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