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사진을 찍는다.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즐겁고 행복한 장면만 남기고 싶어 한다. 어느 누구도 슬프고 괴롭고 상처 받는 순간을 남기고 싶어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때문에 사진을 찍고 좋은 기억들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사진 속의 순간은 영원히 그 안에 그 순간 그대로 남아 있다.
<스토커>는 특별한 영화다. 이 영화의 감독 마크 로마넥은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으로 마돈나와 같은 톱 스타의 작품들을 연출해 호평을 받았던 사람이다. <세븐>, <패닉룸>등을 만든 데이빗 핀처 감독이나 <더 셀>의 타셈 싱 같은 이들도 뮤직 비디오를 연출하다 그 재능을 인정 받고 장편 영화 연출에 합류한 이들이다. 그들의 작품 세계는 뮤직비디오 만큼이나 감각적이고 그들만의 특별한 감수성을 지닌 것이 보통이다. 마크 로마넥 감독의 데뷔작인 <스토커>역시도 앞서 밝힌 감독들 만큼이나 독특하고 예민하다.
결혼으로 시작해 집을 만들고 아이를 갖고 그 아이가 자라서 몇 차례 생일을 맞이하면서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는 가정의 모습은 총 천연색으로 그려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 행복감에 동화되고도 남음이 있다. 그들을 사진으로 바라보고 있는 주인공은 결혼도 하지 않고 십년이 넘게 마트 사진 코너에서 사람들이 맡긴 필름을 현상해 주는 일을 하고 있다. 행복한 가족의 웃음 만큼이나 화려한 색감은 오직 사진 속에서만 존재하고 주인공이 일하는 사진관의 환경은 창백할 정도로 희고 건조해 보인다. 티끌하나 보이지 않는 완벽한 흰색은 주인공의 머리색깔과 피부색 그리고 옷에까지 번져 모든 쾌락과 즐거움을 차단한다.
노골적으로 이분법화 된 영상은 감독의 전직이 뮤직 비디오를 연출 했었다는 사실과 맞물리면서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인간적인 것과 비 인간적인 것. 외로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모든 것은 색깔의 존재와 창백함으로 두드러지며 스크린을 보는 동안 미니멀 하면서도 자극적인 영상은 주인공의 감정을 극도로 쓸쓸하게 노출 시키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그리고 이러한 영화적 환경은 관람자로 하여금 자신을 반추해 보게끔 하는 묘한 마력을 지닌다. 과연 나는 쓸쓸하지 않은가. 누가 내 곁에 남아 있는가. 나는 행복한가. 내 삶은 총 천연색 칼라로 가득한 것일까.
<인썸니아>로 연기변신을 시도한 로빈 윌리엄스는 이 작품에서도 그간 선하기만 한 이지미를 과감히 벗어 던지고 외롭고 쓸쓸하며 움직이는 것에 적응하지 못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해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그의 따듯하고 포근한 미소는 <스토커>에서 뒤틀릴 대로 뒤틀린 외로움으로 가득하며 음울하고 기분 나쁘기까지 한 미소로 변해 기존 이미지를 철저히 파괴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어떤 이들은 이러한 변화에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의 떨리는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그에 대한 분노와 연민 그리고 고독과 상처가 고스란히 폐부를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어쩌며 로빈 윌리엄스의 진짜 얼굴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하지만 영화는 너무 과한 욕심을 부리다가 그만 그 욕심을 제대로 채우지 못해 멈칫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인공의 이름은 노골적으로 싸이(psycho의 싸이)로 그 캐릭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그 배경에는 불우한 어린 시절이 있었음을 마지막 독백을 통해 이야기 한다. 완벽한 가정생활 뒤에는 불륜과 배신이 있었고, 그러한 이야기는 극도로 스타일리쉬한 영상에 파묻혀 그다지 또렷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마크 로마넥이라는 크레딧이 나오는 다른 영화가 보고 싶은 욕구가 이는 것은 그 만큼 이 영화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기 때문이 아닐까. 훗날 그의 이름이 데이빗 핀처 만큼 유명해 질 날이 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