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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아로스타미의 은총과도 같은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 | 2002년 11월 25일 월요일 | 구인영 이메일

9.11 테러로 인한 미국 본토내의 반(反) 중동 기류는 깐느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던 커리어를 지닌 신작 <텐 Ten>을 들고 뉴욕영화제에 참가하려던 ‘이란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미국 비자 발급을 거부하였다. 그리고 그는 항의의 표시로 더 이상의 노력을 포기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에는 입국 사증에 찍히는 스탬프 따위는 필요가 없다.

어찌되었건 우리나라에 뒤늦게 도착한 1999년 작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이하 <바람이…>)를 보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직면한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어떤 표정을 하였을지가 상상이 된다. 전작들인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올리브 나무 사이로>, <체리 향기> 등에서부터의 일관된 흐름이겠지만 그의 영화적 진실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감내한 채로도 내면의 지혜를 차분히 발현해 낼 수 있는 깊은 내공을 가진 현자가 들려주는 영화보기의 감동이다. 즉, 키아로스타미의 손길이 닿은 영화에는 다큐멘터리인지 극영화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비전문배우들의 연기를 담아내는 연출이 있고 이란의 소박한 구석구석이 가진 찰나의 풍경들을 잡아낸 로케이션들은 ‘이 영화의 장면으로 만든 달력이 있다면 누구보다도 먼저 그 달력을 사겠다’고 언급한 외지의 평이 있을 정도였으니 말 다한 것이며, 영화와 삶에 대한 키아로스타미의 관조는 낮은 자세로 관객과 호흡을 같이함으로써 충격적인 말초적 흥분을 쫓는 그들의 시선을 서서히 변화시키는 원숙함에 도달한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처음 보는 사람도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 <바람이…>는 이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테헤란에서 450마일 떨어진 외딴 마을 시어 다레(검은 계곡)의 구불구불한 산길에 흙먼지를 날리며 들어서는 지프 한대. 안내하는 소년 파흐저드에게 ‘보물을 찾으러 왔다’고 눙치는 베흐저드 일행은 사실 시어 다레의 독특한 장례 풍습을 촬영하러 온 취재팀이다. 최고령 할머니가 죽음에 가까웠다는 사실에 서둘러 마을을 찾은 이방인(들)이 - 주인공 베흐저드를 제외한 나머지 일행은 할머니는 도대체 언제 운명하냐며 도시에서 온 사람들답게 엄청 보채지만 모두 보이스 오버로 처리되어 얼굴을 비치지 않는다. 다행스럽다. – 목적을 달성하여 방송 프로그램을 완성할까? 과연.

선병질적인 인상의 베흐저드. 차를 마시며, 마을의 거리를 걸으며, 소년 파흐저드와 이야기를 나누며, 핸드폰 안테나를 받쳐들고 유일하게 문명과의 통화가 가능한 묘지 산꼭대기로 올라 땅바닥에 달라붙어 있는 거북이를 뒤집으며, 우유를 짜주는 마을 처녀 제이납에게 <바람이…>의 시나리오의 토대가 된 포루그의 사랑의 시를 읊어주며 그리고 최후로는(키아로스타미 영화의 반전을 즐기시라!) 할머니의 죽음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그가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이의 삶을 구출하게 되기까지, 시어 다레와 마을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도시의 때를 벗고 내면의 변화를 겪게 된다. 그것은 마치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삶의 무게에 지친 주인공이 짙푸른 하늘 아래 산들바람이 살랑살랑 뺨을 간지럽히는 황금빛 밀밭에 누워 즐기는 망중한 중에 불현듯이 깨닫게 되는 그렇지만 거스를 수 없는 천국의 계시와도 같다. 아마도 그의 영화는 그런 식으로 항상 우리 곁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2 )
ejin4rang
내용이 참신하다   
2008-10-16 15:32
kangwondo77
리뷰 잘 봤어요..좋은 글 감사해요..   
2007-04-27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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