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 렉터가 돌아왔다. 가장 끔찍스러운 살인마로 기억되었던 그가 세월의 벽을 뛰어 넘어 더욱 젊고 팽팽한 모습으로 스크린에 복귀한 것이다. 범죄의 해결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FBI가 어떻게 이 끔찍한 살인마와 연을 맺게 되었는지 궁금해 하는 이들을 위해 준비된 <레드 드래곤>은 <양들의 침묵>, <한니발>씨리즈의 가장 앞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실 이 토마스 해리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레드 드래곤>은 이미 십수년 전에 <맨헌터>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진 경력이 있다. 하지만 그때 당시만해도 토마스 해리스의 진가를 몰랐던 영화사는 특별히 내 세울 것 없는 싸구려 분위기 물씬 풍기는 스릴러로 빚어내는데 그쳤고, 이어 그가 써낸 <양들의 침묵>이나 <한니발>이 영화화 되고 성공을 거듭하게 되자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가장 먼저 만들어져야 했던 이야기가 볼품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는지 아니면 돈에 눈이 멀어서 그랬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레드 드래곤>은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모험을 감행해 새로운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선보이게 되었다.
<양들의 침묵>과 <한니발>의 노선이 달랐듯이 <레드 드래곤> 역시 한니발 렉터라는 캐릭터를 제외하고 특별히 어떤 일관성을 찾기란 쉽지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양들의 침묵>이 크라리스 스탈링이란 신출내기 요원과 한니발 렉터와의 심리적인 교류에 초점을 맞췄다면 <한니발>은 렉터 박사의 엽기적인 행각에 힘을 실었고 이번 <레드 드래곤>은 윌 그레이엄이라는 FBI요원과 렉터 박사 그리고 범죄자 이빨요정 세 캐릭터에 골고루 안배해 비중을 나누어 극 자체를 정통 스릴러로 포장한다. 자칫 엉성해 보일 수도 있는 이러한 삼자 구도는 그러나 탄탄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호연 그리고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로 극의 재미를 배가 시키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관객들의 가슴을 졸이게 만든다. 이미 미국에서 개봉당시 역대 10월 개봉작 중 가장 높은 수익을 기록했고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라는 진기록을 달성했으니 영화의 재미에 딴지를 걸기가 쉽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영화가 시작되고 반 정도가 지나고 나면 이빨요정의 정체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때문에 이 영화는 어느 순간 힘을 잃고 뭔가 특별한 반전을 기대했던 이들로 하여금 실망하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브랫 래트너 감독은 튀기 보다는 안정적인 연출 방식을 통해 극의 진행을 매끄럽게 하고 있지만 과연 전작들의 후광이 없었어도 이만큼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 지에 대해선 미지수다. 특히 <한니발>에서 보여진 엽기적인 끔찍함들로 인해 실제 <레드 드래곤>에서는 도드라지지 않는 무서운 장면들이 훨씬 더 혐오스럽게 보여지고 있으니 전작의 아우라가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영화를 보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