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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전곡 연속듣기 01. 내가 만일 (Vocal 문소리) 02. Main Title 03. 하늘 04. 오아시스 05. 그녀의 하늘 (Voice 문소리, 이재진) 06. 외출 07. 겨울 08. 그림자 09. 나무 10. 빛 11. 겨울 (Piano) 12. Festival Song of Assam |
Original Music by 이 재진
"도그마 95 Dogma 95” 선언문구 (순결 십계명) 중에 영화에 사용되어지는 모든 사운드는 현장에서 발하는 것이어야만 된다는 구절이 있다. 가식적이고 인위적인 영화읽기를 거부한 이들 집단이 생각하기에 영화 촬영장 이외의 장소에서 덧입혀진 사운드는 영화를 만드는 자신들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에게 더할나위 없는 사기행위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분명 이 창동 감독과 저멀리 덴마크의 도그마 집단들간의 일종의 음모따위가 있었던 것도 아닐터인데 이리도 그들이 생각하는 바가 일치할 수가 있으랴… 본 OST 리뷰를 쓰기 위해 극장을 찾은 본인은 적지않게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영화 내내 들려오는 음악이라곤 달랑 3곡이 전부이니 말이다. 분명 영화가 개봉되어지기 한참 전에 국내에서는 흔치 않은 이미지 앨범도 발매되었으며, 개봉 즈음해서는 이 재진이라는 걸출한 음악가가 담당한 OST 앨범도 버젖이 발매되었다고 들었거늘, 무슨 치명적인 오류라도 있는 것은 아닌지 당황스러움을 넘어 걱정이 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수소문해본 결과 충분히 납득할만한 내막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되었으며 충분히 수긍이 갈만한 내막이였다.
저 멀리엔 영국 노동계급의 애환을 대변하는 켄 로치 Ken Loach 감독이 있다면 우리네에겐 그 못지않는 리얼리스트인 이 창동 감독이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초록 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3편의 영화를 통해서 그는 한국사회의 감추고 싶은 면만을 들추어내어 일반인들이 나누는 화두의 중심에 세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보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보지 않으려 했던 우리의 어리석음에 회초리 들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 보다 대가 쌘 나뭇가지를 고르려는 심정으로 한치의 가식적인 미화를 용납치 않았었다. 그의 영화에 사용되었던 판타시즘은 처절함과 냉혹함을 더욱 극한에 내달리게 하려던 그의 노련함이였을 것이다. 에밀 쿠스트리차 Emir Kusturica 의 공중재림 처럼 말이다. 그런 그에게 영화음악이 갖는 의미 역시 남달랐을 터인데, 나약한 인간의 심성을 고려한다면 객관적인 시선을 잃게 만들 수 있는 여지가 농후한 영화음악은 이 창동, 그에겐 하등의 이용가치가 없는 수단이였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애절한 올드팝이라도 한곡 삽입한다면 더 할 나위없는 명장면이 될 터인데… 영화음악의 덕좀 볼량 싶으면... 충분히 대중사이에서 뜨는 것은 따놓은 당상인데…’ 싶은 부분이 한둘이 아니였음에도 여지없이 들려오는 것은 자동차들의 엔진소리와 필요 이상으로 참견하기 좋아하는 동네 사람들의 수근거림이 전부이다. 기대에 부응해주지 않는 그를 원망하기도 하고 괘씸하다 여길수도 있지만 덕분에 그동안 보려 하지 않았던 처절함과 그안에서 억척같이 살아숨쉬는 - 가히 판타지라 받아들여도 될만한 – 희망을 놓치지 않고 보게 됨은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오아시스> 의 음악을 담당하고 있는 이 재진은, 실력있는 대중 음악가들이 여럿 배출되어온 ‘유재하 음악제’ 출신이며, 또한 역시 실력있는 음악인들만이 인연지을 수 있다는 버클리 음대 출신이다. 한 사람의 경력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해야만 한다면 – 그래서야 안되겠지만 – 분명 이 재진이란 음악가는 훌륭한 음악가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그가 만들어온 영화음악들 <박하사탕>, <파이란> 을 통해 그의 범상치 않은 재능을 알 수 있기도 하다. 자기 자신에 의한 평가를 넘어 타의에 의해 뛰어난 영화음악가로 인정받고 있는 그에게 어찌보면 영화 <오아시스> 에서의 찬대라면 찬대라고 할 수 있는 대접은 무척 수치스러운 것일수도 있었을 것이다. 영화를 관람하는 내내 들을 수 있었던 곡은 단 3곡으로써 그나마 그중 1곡은 안 치환의 “내가 만일” 이란 곡을 그대로 옮겨온것에 불과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 재진이란 음악가는 진정 영화음악이란 무엇인가를 아는 음악가임에 다행이다. 영화상의 비쥬얼을 빌어 자신의 창작물을 빛내보리란 얄팍한 계략따위가 아닌 자신의 창작물로 인해 영화관람시 뿐만이 아닌 평생토록 관객들에게 영화가 주었던 무한한 감동을 느끼게끔 하는데에 주를 두고 있음이 말이다. 장편 영화의 음악은 고작 3번째 작업이지만 그의 작품해석 능력이나 그것을 음악으로 승화시키는 그의 재주는 가히 장안의 최고라 할수 있겠다. 본래의 영화 이미지를 지나치게 앞서가지도 아니하며 또한 너무하다 싶을정도로 겸손하지도 아니하다.
안 치환의 “내가 만일” 을 문 소리가 불렀다. 영화에서는 무반주로 들을수 있었지만 OST 앨범에서는 15인이나 되는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담당하였다. 문 소리의 담백한 창법이 참으로 맛깔스럽지만 15인이나 되는 화려한 세션은 여간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영화에서 쓰였던 채로 담아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에 등장했던 여러 판타시즘 씬중 가장 극한을 달리는 판타시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마지막 장면 – 앞으로 무작정 행복한 미래를 맞을 것만 같은 두 주인공들 – 에서 들을 수 있었던 “Main Title” 은 이 재진의 특기라 할만한 탱고 리듬을 근간으로 여러 타악기의 튕겨짐이 매력적인 트랙이다. 훗날을 위해 열심히 운동한다는 남자와 방청소를 하는 여자의 맘 자세와도 같이 장담할 수는 없지만 행복하리라 믿고 싶은 내일에 대한 찬미곡이라고나 할까…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이기도 한 인도 여인과 인도 소년과 인도 코끼리와의 어울림에 쓰였던 “Festival Song of Assam” 은 이국적인 화면만큼이나 이국적인 소리를 들려준다. 홀로단신 피리 부는 사나이가 전면에 나서 곡을 이끌어가고 있으며 그 뒷너머로 빈약한 몇가닥 줄만이 달려있을법한 현악기와 역시 검소하기 그지없는 탬버린과 같은 타악기의 성의없는 울림소리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이 외에 “하늘”, “오아시스”, “그녀의 하늘”, “외출” ,”겨울”, “그림자” 등 영화를 통해 너무나도 아련한 감동으로 자리잡은 이미지들이 이 재진의 뛰어난 작곡 실력을 통해 다시한번 무한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일말의 미화됨이 없이, 혹 조작되어질 수 있다면 보다 추하고 처참해지기를 바랄 이 창동의 영화는 다른 한편으로는 더없는 판타지를 꿈꾸고 있다. 이를 통해 그의 이미지는 한층 더 리얼리즘에 가까워지기도 하고 흔히 볼수있는 판타지 그 이상의 이미지를 관객에게 선사하기도 한다. 이토록 범상치않은 이 창동이라는 감독의 전략에 가장 적절히 부응하는 음악가는 이 재진이라는 사실을 <오아시스> OST 앨범을 통해 뼈저리게 알수가 있었으며 이 재진, 그의 영화음악은 단지 귀로 듣는 음악으로서가 아닌 다시 한번 오감과 육감으로 느끼는 이 재진만의 또 다른 오아시스 였다. 이 두 재주꾼 덕분에 신기루라 여겨졌던 이 세상이 오아시스가 될수있음에 희망을 걸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