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완성도를 신경쓰지 않은 듯 미세하게 흔들리는 화면, 낡은 오아시스 걸개 그림을 고정 샷으로 비추며 버티는 3분 여의 오프닝 크레딧에 의아해 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이니까. 그의 이름은 사회를 비추는 리얼리즘 영화, 훌륭한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연기와 동일시되는 브랜드이다. 아직 <초록물고기>와 <박하사탕> 2편의 영화를 완성했을 뿐인, 소설가 출신 소장 감독에게 그런 네임 밸류는 가당치 않다고? 진정한 감독은 영화로 말한다. 이창동 감독은 또 하나의 ‘작품’ <오아시스>를 통해 자신의 전작들을 한단계 뛰어넘은 자신의 영화적 담화를 비영화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가감없이, 그렇지만 아름답게 웅변하고 있다.
뺑소니 운전으로 교도소에 들어갔던 전과 3범인 사회 부적응자 종두(설경구)가 사회로 돌아온다. 과일바구니를 들고 자신이 저지른 교통사고 피해자 집에 ‘그냥’ 찾아가보고, 그의 딸인 뇌성마비 장애인 공주(문소리)가 혼자 남겨져 있는 광경을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흔해빠진 오아시스 양탄자가 걸린 의정부의 낡은 5층 아파트에서 ‘이름이 공주라고? 공주치고는 좀 그렇다…’라며 함께 웃음을 터뜨리는 둘의 사랑의 시작은 어떤 운명의 끝을 맞게 될까?
공주 강간 장면에서의 설경구의 연기는 다시 한번 현실은 알쏭달쏭하며 예측 불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을 체현하여 보여준다. 그것 자체가 리얼리티와 판타지의 경계에 아슬아슬 서 있는 이창동 감독의 줄타기를 증명하는 것이다. 판타지에서라면 갓 감옥에서 출소한 ‘설 쇠면 서른’ 되는 건장한 남자라도 거동이 불편한 뇌성마비 장애인 여성에게 성적 충동은 가당치 않겠지만, 이창동 감독의 리얼리티는 여지없이 관객의 얼굴을 잡아 쓰라리고 불편한,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대면해야 하는 우리의 구질구질한 현실을 보라고 요구한다. 감옥에서 돌아온 종두에게 ‘삼촌이 없을 때는 살 것 같았어요. 난 정말 삼촌이 싫어요’라고 털어놓는 형수, 공주를 혼자 버려두고 장애인용 아파트에 이사를 가고 방문 조사가 있을 때만 공주를 데리러 오는 공주 오빠 부부의 행동, 공주가 뻔히 보는 공주의 아파트 마루에서 남편과 몰래 섹스를 하는 옆집 아줌마의 실시간 신음소리… 그것들은 차라리 얼굴을 돌려 버리고 싶은, 참기 힘든 경험 이겠으나 우리 옆에, 아니 우리가 행할 수 있는 현실이라는 이름 속에 숨겨진 우리의 잔인한 모습인 것이다.
제 59회 베니스영화제 장편 공식 경쟁 부문에 진출한 <오아시스>는 태생 이야기꾼의 완벽한 시나리오, 출생부터 지금까지의 삶이 녹아있는 듯한 생생한 캐릭터, 설경구와 문소리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는 조연들의 절절한 연기(간간히 배우로 출연했던 류승완 감독의 본격적인 연기 데뷔이다) 등 최근 한국영화에서 보기 힘든 모든 훌륭한 요소들이 합해져 있다. 영화 <오아시스>는 <네발가락>, <뚫어야 산다>, <아 유 레디?>, <긴급조치 19호>등과 앞으로도 개봉이 남은 무수한 함량 미달의 기획영화가 생산되는 2002년 한국영화의 암울한 판도에 오아시스 같은 이상향이며 또한 재미있고 유쾌하며 따뜻한 감동이 있는 멜로 영화로서 길이 남을 걸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