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요즘은 날이 너무 더워서 밖에 나가기가 싫을 정도야. 점심때 회사 밖으로 나가서 뭘 먹을지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지쳐서 쓰러질 것 같아. 이런 때는 정말이지 집 안에서 꼼짝 않고 시원한 냉커피 혹은 수박을 먹으면서 비디오나 신나는 걸로 한편 보는 게 최고의 피서법이 아닐까 싶어. 근데 도대체 어떤 영화를 보면 재미있을까 혹은 더위를 날려버릴 수 있을까 하는 것도 고민 되쟎아. 어설프게 듣도 보도 못한 비디오를 빌려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유혈이 낭자한 호러 영화를 다같이 보기도 좀 그렇고... 적당히 액션도 나오고 호러도 나오고 로맨스에 추리도 조금 끼어 들고 마지막으로 SF 까지 결합한다면 구미가 당기지 않을까? 게다가 이미 전편이 대대적인 흥행성공을 거뒀다는 말에 미국에서 대박을 낸 작품이라는 곁다리까지 붙인다면? 후훗...
두두둥... 이번에 추천하는 작품은 기에르모 델 토로 감독의 <블레이드 2>야. 지난 봄에 국내 개봉해서 꽤 짭짤한 수익을 올렸던 작품이지. 아마 모르는 사람은 없을걸? 일단 전편이 극장과 비디오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고, 심심치 않게 공중파 방송을 통해서 몇 번 소개 되기도 했으니까. 전편에 이어 그대로 웨슬리 스나입스가 주인공 블레이드 역을 하고 있고 몇몇 부분에서 1편의 내용에 연속성이 보이기 때문에 통일성이랄까... 그런 것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
감독 이름이 좀 낯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좀 있을 것 같은데, 기에르모 델 토로 이사람 되게 유명한 감독이야. 우리나라에는 <크로노스>라는 괴이쩍은 흡혈귀 영화로 선보이기 시작해서 <미믹>으로 유명세를 날리기 시작했지. 음... 가장 최근에 선보인 작품으로는 <악마의 등뼈>를 꼽을 수 있는데, 이 작품은 올 부천영화제에 초대되기도 했어. 한마디로 <블레이드> 같은 장르의 영화에서 괴력을 발휘하는 사내라 할 수 있지. 얼굴은 되게 후덕하고 귀엽게 생겼는데, 영화는 다 호러와 판타지 같은 게 결합된 작품들만 만드는지 모르겠어. 그만큼 개성이 강하다고 해야 하나?
여하튼 이번 <블레이드2>에 나오는 악당은 인간은 물론이거니와 뱀파이어의 피도 마다치 않고 빨아 들이는, 마치 전염병을 뿌리는 듯한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리퍼’란 이름의 괴물로 그 ‘쩍’하고 갈라지는 턱을 보고 있자면 갑자기 온몸이 섬뜩해 온다니까. 그리고 그 ‘리퍼’라는 존재로 인해 갈등하고 인간과 뱀파이어가 힘을 합하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저런 상상력이!’ 하는 감탄을 하게 되지. 근데 말이야 그 존재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이 오면 다시 한번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된단 말씀이야. 다양한 장르가 복합적으로 잘 녹아 있어서 오락영화로는 흠잡을 데가 없어. 진짜야!
전작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액션과 함께 빠른 비트의 락, 테크노 등의 메탈릭한 음악이 쉴 새 없이 등장하고 있어서 귀도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 프라하의 풍경과 만화적인 상상력이 어우러진 세트장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감탄을 하게 된다구. 특히 내가 놀랬던, 피로 된 목욕탕과 실험실 세트는 정말 감독의 악취미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그러한 시각적인 효과 하나하나가 참 꼼꼼하게 잘 갖춰져 있어서 그런 면만 봐도 시간이 아깝지 않단 말씀이야.
이 영화의 특이한 점은 뱀파이어의 존재라는 것이 사랑을 갈구하고 자신에 존재에 대해 괴로워 한다거나 갈등하는 존재로 그려지지 않으면 극도로 잔인한 피에 굶주린 악의 화신쯤으로 그려지곤 하는데, <블레이드2>는 인간과 뱀파이어의 혼혈이라는 점부터 일반적인 이분법을 거부하고 있다는 거지.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러한 성찰이나 고민을 가볍게 여기는 듯 하면서도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그 상처를 잘 녹이고 있고, 또한 관객이 지루하지 않도록 현란한 볼거리고 즐거움을 주고 있어서 요즘같이 더위에 짜증나고 질려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거라고 생각해. 한 두어 시간 큰 소리로 영화를 틀어놓고 그 그로테스크한 매력을 즐기다 보면 더위 쯤은 간단히 이길 수 있게 된다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