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들이 떼거지로 출연한 영화가 있다. 어마어마한 출연료? 그냥 밥값정도나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돈은? 사랑하는 '옵빠'를 보려는 청소년팬들의 주머니돈을 모아 모아 제작사가 번다. 한마디로 재주는 가수가 부리고 돈은 제작사가 버는 격이다. 그럼 과연 어떤 영화냐고?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바로 <긴급조치 19호>다. <긴급조치 19호>는 코미디언 서세원이 제작자로 변신, <조폭 마누라>이후에 찍은 '서세원프로덕션'의 두번째 영화이다. 그러나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치밀하게 계획된 돈계산에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제목 '긴급조치 19호'는 영화속에서 정부가 발령한 노래금지법을 일컫는 말이다. 세계 곳곳에서 가수들이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대통령이 되자, 위기의식을 느낀 정부는 '긴급조치 19호'를 발령한다. 비상사태가 선포되는 동시에 군인들은 가수를 잡아들이고, 노래를 부르는 것은 법으로 금지된다. 콘서트를 하던 가수 홍경민 역시 잡혀가게 되나, 팬클럽 회장이자 대통령 비서실장의 딸인 민지의 도움으로 김장훈과 함께 위기를 모면한다. 그러나, 가수들이 탄압받고 끌려가는 사태가 계속되자 홍경민과 김장훈은 팬들과 함께 힘을 모아 정부에 저항한다.
마치 또 한편의 '서세원쇼'를 보는 것 같던 영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한계를 드러낸다. 유명한 가수들로 메꾸려 했던 스토리는 이후에는 반복되는 억지 유머로 지겹고 뒤로 갈수록 우왕좌왕하는 스토리는 개인기만으로 메우기는 벅차다. 홍경민과 김장훈은 영화를 수습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지만 이미 질려버린 관객들의 마음을 붙잡기에는 역부족이다. 가수라며 자수하겠다는 양진석은 두세번이나 등장, 같은 수법으로 관객들에게 억지웃음을 요구한다. 소재가 빈약해지니 개인 사생활까지 들추어 웃기려는 민망한 대사들까지 등장한다. 영화속에서 군인들에게 잡혀오는 싸이는 자신은 대마초 때문에 왔다고 대답하고, 동료가수들은 배신자 주영훈에게 '그러니까 여자에게 차인다' 라며 현실인지 영화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비난을 퍼붓는다. 그냥 웃어버리기에는 지나치게 조롱거리가 되는 가수들의 사생활은 웃음대신 당황스러운 침묵을 조성한다.
무엇보다도 관객들의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이런 가수들의 대거 출연이 바로 흥행을 노리고 철저하게 계산된 것이라는 점이다. 스타를 보기위해 단체관람이라도 불사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흥행수익을 계산한 제작사의 의도는 눈에 보이는 듯하고, 간접적인 홍보효과를 위해 가수를 출연시킨 기획사의 의도는 특정 가수들을 유독 자세하게 묘사하는 영화속 대사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더욱이 출연자들은 영화를 통해 부모님은 스타에 열광하는 자녀들을 이해하고, 아이들은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며 가족들이 함께 관람하기를 권유했지만, 영화속에서 지나치게 남발되는 욕설은 아무리 생각해도 가족 영화에 적합하지는 않다. 청소년들의 우상인 가수들이 말끝마다 '개XX', '지X', '씨X' 등의 말을 거리낌없이 뱉어내는 유쾌하지 않은 모습을 보고 어느 부모님이 자녀들이 그런 가수들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을 이해할 수 있으랴.
김태규 감독은 기자회견장에서 독재정권시대를 살아온 지난 세대와 지금 신세대들이 현실속에서 투쟁하는 모습에서 연관성을 찾았으며, 이 두 세대가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세원의 인맥으로 출연한 인기가수들의 코믹 퍼레이드가 영화의 주요 포인트가 되다 보니 감독이 진정으로 전달하고자 한 의도는 수많은 스타들의 개인기에 가리워지고 만다. 영화가 국민들을 우롱하는 정부에게 날카로운 일침을 놓는 블랙 코미디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딸과 함께 부르던 동요를 부름으로써 비서실장이 시도하는 화해의 결말도 가수들의 개인기로 영화의 러닝타임을 채우다 보니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정작 반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부랴부랴 맺어진다. 소문난 잔치였지만 볼거리는 가수들의 개인기밖에 없다. 출연스타의 열광팬이 아니라면 100분을 버티기엔 인내력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