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은 죽음과 상실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여기 사랑하는 사람을 떠난 보낸 두 여성이 있다. AI가 상용화된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한 <마인드 유니버스>를 통해 머지않은 시간에 경험할지도 모를 이별의 형태를 만나보자. 7일(목) 개막하는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출품된 작품으로 8일(금)부터 17일(일)까지 웨이브(wavve)에서 손쉽게 만나볼 수 있다.
79세 ‘희진’(이주실)은 40년을 넘게 함께한 남편을 떠나보냈다. 어떻게든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에 희진은 마인드업로딩 시스템에 접속하여 30대의 자신과 남편을 만난다. 함정은 ‘무’(無)인 상태의 낯선 남편과 만나 서로를 알아가지만, 접속할 때마다 남편의 기억은 제로로 리셋된다는 점이다. 남편과의 기억을 홀로 간직한 채, AI와의 만남을 거듭하면서 희진은 점차 지쳐간다. 우주탐사대의 일원인 ‘소리’(김예랑)는 소테르 은하를 횡단하는 중 아버지 ‘형석’(김형석)의 온라인 장례식에 초대받는다. 그곳에는 AI 김형석이 여러 사람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다. 유명한 작곡가였으나 항상 일이 우선이었던 아버지에게 소리는 선뜻 말을 건네지 못하고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마인드 유니버스>는 업로딩된 인공지능에 대한 두 개의 단편 ‘내일의 오늘’과 ‘우리의 우주’로 구성된 옴니버스 장편영화다. 과학의 발달로 인해 AI 등의 형태로 고인과 재회가 가능한 미래상과 그 안에 흐르는 그리움과 추모 등 변하지 않는 정서를 포착해 SF 장르 안에 담아냈다.
‘우리의 우주’는 인공지능을 테마로 코로나 시대의 비대면 일상을 반영한 ‘랜선 장례식’을 고안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에피소드다. 이때 아버지 ‘형석’으로 작곡가 김형석이 출연하는데 특별출연의 개념이 아닌, 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고 가는 배우 김형석의 새로운 면모를 접할 수 있다. 약간 버퍼링 걸린 듯한 AI의 모습마저 실감나게 연기한다. 실제 김형석을 그대로 옮긴 듯한 캐릭터라 그에 대해 잘 아는 관객이라면 좀 더 색다르게 즐길 수 있겠고, 데뷔곡인 故 김광석의 ‘너에게’를 비롯해 그의 초기곡이 자주 거론되는 등 추억을 소환하는 면도 있다.
온라인 장례식장에 지인방, 가족방, 알코올방 등 여러 방을 마련하여 그 특색을 살린 점도 재치있다. 원하는 방에 들어가 채팅을 통해 고인의 AI와 대화하고, 부의금을 보내고, 술을 앞에 두고 주거니 받거니 하며 예전을 회상하다 티격태격하는 등 매우 현실적인 모습이 킬 포인트다. 이때 배우들이 어찌나 연기를 찰지게 하는지 전통적인 장례문화에 내재한 해학마저 느껴질 정도다.
‘우리의 우주’가 온라인 상조 어플이라는 현실 가능성 있는 이야기로 웃픈 정서를 선물했다면 첫 에피소드인 ‘내일의 오늘’은 시간제한이라는 제약을 걸어 장르물로서 긴장감을 높인다. 기억을 업로드해 시스템에 접속하여 젊은 시절의 남편과 만나지만, 남편은 아내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3시간 접속, 24시간 휴식’이라는 규칙으로 마치 타임루프처럼 같은 듯 다른 만남을 반복하면서 남편의 AI가 자체 진화한다는 설정이다. 새로운 컨셉이라기보다는 접속이 거듭되면서 인물의 심리 변화를 통해 인간 삶의 유한성과 영속성, 사랑 등 가치의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에피소드다.
분량이 많지는 않으나 노년의 ‘희진’으로 분한 이주실의 연륜 있는 연기가 극에 안정감을 부여한다. 그는 두 번째 ‘우리의 우주’에도 출연하는데, ‘형석’에게 어떤 의미를 지닌 캐릭터인지 살펴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