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독일과 한국의 4강전이 있는 날이다. 하늘은 깨질 듯이 맑고 구름이 낮게 떠다니는 것이 아무래도 이겨 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겨줬으면... 하지만 지더라도 나는 우리 선수들을 응원할 테다. 체력이 바닥 났을 텐데 열심히 현재까지 최선을 다한 대한의 건아들이 자랑스럽다. 한국 축구 파이팅 이다.
이번 한국 축구가 보여준 것은 희망이며, 꿈이라는 생각이 든다. 4500만의 응원이 하나가 되어 한목소리로 세상의 어둠을 모두 걷어가 버린 것 같다. 세상은 아직 살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가 어렵다고 해도 혹은 나날이 사람의 마음이 각박해져 가고 있다 해도 아직까지 이렇게나 버티고 있는 것은 일말의 희망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갑자기 가슴이 뿌듯하다. 그리고 현재 내 존재에 대해 감사한다.
집안의 집기를 팔아다가 마약을 구하는 아들과, 텔레비전 출연을 꿈꾸며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우연히 마약을 접하게 된 어머니. 환각에 빠져 더 이상 벗어나지 못하고 추잡한 성행위로 망가져가는 여자친구 등 평범한 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더 이상 그곳에는 희망이란 없어 보인다. 어떤 이들은 마지막 등장인물 들의 행동(태아의 모양으로 몸을 웅크리는)을 통해 어머니의 태고로 회귀를 꿈꾸며 치유와 회복의 끝맺음을 보여준다고 하지만 그건 갈데 까지 간 이들이 더 이상 갈 데가 없음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장면으로 이해가 되면서 더욱더 쓸쓸하고 비통해 보였다.
절대 악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까지 비극적인 결말로 마무리되는 영화는 최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반전을 거듭하는 스릴러도 아니고, 그렇다고 커다란 비밀이 감추어진 지적인 이해를 요하는 작품도 아니면서 <레퀴엠>은 희망이 거세된 상황들을 교차하며 세상에 꿈이 없을 때 그것은 죽은 것과 마찬 가지 임을 말하고 있다. 어쩌면 그래서 감독은 원제를 "Requiem for a Dream"이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꿈과 희망은 이야기 속에서 완전히 죽어 버렸고, 영화는 그 이야기를 위한 장송곡이 아닐까.
좌우 혹은 상하를 가로지르는 환상적인 화면 분할과, 다양한 카메라 워크 그리고 오랜만에 스크린에 등장한 <엑소시스트>의 엘렌 버스틴과 올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제니퍼 코넬리, 신예 자레드 레토 등의 호연 등으로 아카데미에서도 주목 받았던 <레퀴엠>은 세상을 지나치게 가볍게 보는 이들에게 세상의 이면을 보여주는 고마운 영화다. 뿐만 아니라 <레퀴엠>은 아무리 작고 유치하더라도 희망과 꿈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은 아름다우며 현재에 감사하게 만드는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