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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밈, 혐오상징물, 페페캐시, 민주화 상징? 왓챠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
2021년 7월 1일 목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툭 튀어나온 눈알이 인상적인 개구리 캐릭터를 아시나요? 이름이 ‘페페’라는 것까지는 모르더라도 온라인상에서 돌아다니는 짤을 한 번쯤은 접했을 터. 하지만 그의 출신과 성장과정에 대해 자세히 아는 이는 드물 것 같다. 보기만 해도 짠한 감정 유발하는, 묘한 귀욤미 장착한 페페의 굴곡 있는 여정을 왓챠 익스클루시브 다큐멘터리 <밈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를 따라 조명해 본다.

2005년 ‘작고 행복한’ 개구리 탄생


페페의 아빠는 젊은 예술가 맷 퓨리다. 어릴 때부터 무엇보다 개구리 그리는 것을 좋아한 맷은 많은 개구리를 그렸으나 그중 페페는 좀 특별했다. 샌프란시스코 중고 매장에서 일하던 맷은 매일 같이 새로 들어오는 장난감을 보며 영감을 얻어 시간이 날 때마다 만화를 그린다. 이 시기에 ‘페페’는 비로소 이름이 생기고, 더불어 친구인 울보 ‘브렛’도 생긴다.

이후 파티광 ‘랜드울프’, 무리의 개그맨 ‘앤디’까지 더해져 4총사로 구성된 유명한 만화 ‘보이즈 클럽’이 탄생한다. ‘보이즈 클럽’은 맷이 친구들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 4인방을 주인공으로 주로 그의 대학생활 경험담을 그린 만화. 막내 페페는 언뜻 봐도 아빠(맷)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발점은 ‘Feels good man’


‘보이즈 클럽’에서 페페가 친 대사 ‘feels good man’이 언제부터인가 인터넷 이곳저곳에서 눈에 띄기 시작한다. 헬스하는 남자들이 전후 사진을 올리며, 심지어 개나 고양이 등의 동물 사진에도 뜬금없이 올라온다. 이때까지만 해도 맷과 그 친구들은 설마 ‘페페가 한 말 때문이겠어?’라고 반응했을 정도. ‘밈’화의 시작이다.

‘밈’(meme)이란? 1976년 리처드 도킨스가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 생물학적 모든 것은 유전자에 의해 좌우되지만, 문화는 밈에 의해 좌우된다는 이론이다. 사람 사이의 모방을 통해 복제된 정보가 원시적인 문화의 바닷속에서 떠다니는 걸 볼 수 있다고. (by 수전 블랙모어 박사, ‘밈 문화를 창조하는 새로운 복제자’ 저자)

4챈(chan)의 픽!


‘자신의 찌질함과 이상함을 인정하는 그 순간이 바로 완벽한 4챈의 정신’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웹사이트 4챈의 유저들은 스스로 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Training)를 자처한다. 학생도 직장인도 훈련생도 아니라는 뜻으로 엄마 집 지하실에 처박혀 인터넷을 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축약적으로 표현한 것. NEET임을 인증하는 짤에는 어김없이 ‘페페’가 함께하고 동시에 페페의 얼굴은 점점 어떤 구슬픔을 띠는 듯 변해간다.

4챈에서 니트와 접합한 페페, ‘슬픈 개구리’로 거듭난다. 그런데 4챈의 동병상련 친구인 페페가 어느 순간 셀럽이나 연예인 등의 눈에 들어 사랑받기 시작하자, 분노한 4챈은 ‘유행 추종자’와 페페를 공유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점차 흉한 짤들을 양산해 내기 시작한다.

'4챈'은? 어머니와 살던 14살 크리스토퍼 풀은 밖에 나가지 않고 인터넷만 하면서 4챈 사이트를 만들었다. (그는 2010년 테드 연설에 나설 정도로 대성공을 거둔다) 4챈의 기능 방식은 밈을 생성하는 데 완전히 특화돼 있는데 댓글이 많을수록 위로 올라가고 댓글이 적으면 밑으로 가라앉는 방식, 즉 관심을 끌기 위한 진화론적 경쟁을 유도한다. (by 예술가이자 작가 데일 베란, ‘4챈: 트럼프 출현의 스켈리톤 키’저자)

트럼프와 대안 우파도 픽!


미국 대선 기간에 4챈은 밈을 생산해 유행 주총자를 통해 공유하며 사람들을 트럼프의 지지자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인종 차별과 갈라치기, 혐오와 폭력 조장 등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성을 내포한 밈은 페페와 함께 널리널리 퍼져나가는 데 이때 ‘페페’는 아주 유용한 도구로 역할한다.

정색하고 따지고 들어오는 이들에게 페페를 앞세우며 그저 ‘장난’ 혹은 ‘농담’으로 치부해 버리면 끝나기 때문이다.

트럼프 선거 캠페인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이러한 현상을 ‘밈 대전’이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최고의 밈, 가장 효과적인 밈을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거예요. 영향력도 돈도 연줄도 없는 사람들이 괜찮은 밈을 하나 뽑아내면 순식간에 유행하기 시작했어요.”라고 당시의 비정상적인 흐름을 전한다.

여기에 신비주의자이자 학자인 존 마이클 그리어는 ‘밈 마법’을 거론하며 당시의 비이성적인 상황을 설명한다. “개구리 페페가 도널드 트럼프의 동반 출마자나 다름없어졌을 때 신기한 기운이 작용했죠. 밈이 중심점이나 씨앗 역할을 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에너지를 쏟아붓죠. 그게 밈 마법의 기본이에요.”

다시 말해, 4챈 이용자들은 ‘페페’의 이미지에 트럼프가 백악관에 들어갈 수 있도록 희망과 에너지를 담아 쏟아 냈고, 결국 해냈다는 것이다.

혐오상징물 지정과 아빠 맷 퓨리의 ‘페페’ 구명운동


어느 순간 백인 민족주의 상징이자 대안 우파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로 등극한 페페, 결국 반명예훼손연맹에 의해 혐오상징물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기에 이른다.

자기 캐릭터를 마음대로 쓰게 내버려 뒀던 맷 퓨리는 뒤늦게 심각성을 느끼고, ‘페페 구명 캠페인’을 통해 혐오의 상징물을 사랑의 상징물로 바꾸고자 노력하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 결국 자신이 그린 만화를 통해 공식적으로 페페의 죽음을 알리고 그의 장례식까지 치르기에 이른다.

하지만, 페페는 여전히 전 세계 인터넷을 떠돌며 활약을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넷상에서는 희귀페페를 잡는 게 대 유행하고, ‘페페캐시’라는 가상화폐도 생긴다.

암호화페 거래자 피터 갤은 “희귀페페를 소유하는 건 우위에 서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디지털 아트 박람회에 방문한 그는 그곳에서 경매에 참가, ‘호머 페페’를 350,000 페페캐시(약 39,000달러)에 낙찰 받는다.

이렇게 높은 가격이 형성된 이유는? ‘호머 페페’ 카드에는 ‘Wait a mintue. I’am Pepe!’라고 쓰여 있다. 즉, 오타가 난 건인데 (원래는 minute)그래서 ‘졸라’ 희귀하고 그렇기에 그 가치가 있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전한다.

2019년 홍콩 민주화 혁명에 등장한 페페


컴퓨터 공학자 제러미 블랙번은 과학적 관점에서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온라인 행동양식을 연구해왔다. 그가 고안한 밈 측정 시스템은 특이 현상을 발견한다.

트위터, 레딧, 4챈 등 정치 게시판에서 10만 개의 글을 수집하고, 1억 6천 만개의 특이한 이미지들을 검사한 결과 매우 다양한 종류의 밈들이 있는데 종류마다 하나씩은 꼭 페페버전이 있는 경향을 띤다는 것. 즉 어떤 밈을 골라도 페페가 어떤 방식이나 형태로든 하나씩은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다.

맷 퓨리는 늦었지만, 페페를 무단으로 도용해 혐오를 조장하는 동화를 쓴 출판사를 상대로 판매금지를 걸고, 대표적인 우파 방송인 인포위즈로부터는 승복과 합의, 일정액의 위자료를 이끌어낸다.

하지만, 혐오상징물 데이터베이스에서 ‘페페’ 이름을 지울 수는 없었는데, 2019년 8월 홍콩에서 이상한 기류가 포착된다. 뜬금없이 페페가 홍콩에서 자유, 민주주의 청년운동의 상징으로 거듭난 것. 제레미 블랙번은 맷에게 ‘페페를 돌려받기는 사실상 힘들 것’이라고 위로했는데 마치 영화 같은, 꿈 같은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미디어의 영향력이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아쉽게도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에서는 그 전모를 다루지 않는다. 주목할 점은 2016년 미국 대선 캠페인 당시 누군가 ‘적은 상대 정당이 아닌 미디어’라고 한 대목이다. 미디어의 영향력이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해진 오늘날, 누구도 그 힘의 크기와 한계를 예측하는 것도 그 방향성을 예단하는 것도 힘들다. ‘페페’는 과연 자연적인 흐름을 타고 홍콩 민주화 운동에 동행한 걸까, 아니면 누군가의 의도로 그 자리에 섰을까.

아서 존스 감독이 연출, 제36회 선댄스영화제(2020)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사진 출처_Visit Films

2021년 7월 1일 목요일 | 글 박은영 기자(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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