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의 고질병(?) '영사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겠다. 동숭홀에서 <칼리 사와르>가 상영되던 도중 관객석에 환한 조명이 켜졌던 일은 애교로 지나칠 수 있었지만 <버스, 정류장>은 달랐다. <버스, 정류장>은 일반 영화보다 더 넓은 화면(2.35:1)으로 만들어진 영화. 상영시 특별한 렌즈가 필요하지만 여성영화제 측은 미처 그것을 고려하지 못했다고. 따라서 관객들은 좌우가 없고, 상하가 넓어져 마이크가 노출되고 구도가 맞지 않는 화면을 감상해야 했다. 영화가 끝난 후,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무대에 오른 이미연 감독은 상당히 난감해하는 표정이었고(배우 김태우는 그 옆에서 어쩔 줄 몰라하고), 프로그래머는 거듭 사과하며 재상영 여부를 논의해보겠다는 약속을 남겼다.
Q: 감독이 영화에 담아내고 싶었던 메시지는?
A: 홍보의 초점이 17살 여자와 32살 남자의 사랑으로 맞춰져서 멜로를 기대하신 분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차라리 그 관계가 우정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그들의 내면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서 변화하는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다.
Q: <접속>, <공동경비구역 JSA> 그리고 이번 <버스, 정류장>까지 김태우가 명필름 영화 에 연이어 출연한 이유는?
A: 옆에 가만히 서 있는 게 불쌍하셨나 보네요(웃음). 우연치 않게 출연한 작품의 흥행성적 이 다 좋아서. 하지만 이번 영화 때문에 어떻게 될지(웃음).
Q: 영화 주인공인 재섭과 소희의 고립된 상황이 한국 정서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
A: 한국 사회도 현대화되고 복잡해지면서 '고립'의 모습이 분명히 존재한다. 연출하면서 의도적으로 주변을 생략하기도 했다. 그들의 내면을 드러내기 위해 두 사람에게만 집중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어쩌면 한국에서 여자로써 살고, 영화를 하는 나에 대한 자각이 맞물린 결과일 지도 모르겠다. 사회의 마이러니티에게는 혼자일 수 밖에 없는 모습이 있다.
Q: 영화의 결말이 세계와의 화해인지, 둘만의 폐쇄인지?
A: 재섭이 운전면허를 따지 못하는 것처럼 삶은 의도한 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나 스스로가 비관적인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 재섭이 소희를 만나 변화하려는 것도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결말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였다.
Q: 버스, 정류장이라는 공간의 사용 의미는?
A: 영화 속 정류장들은 서울의 변두리에 위치한다. 그런 공간을 통해 행동반경이 제한된 로드무비를 그려내고 싶었다.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구사한 형식이다. 버스는 일상적이고 대중적이지만 동시에 익명화된 공간이다. 즉, 익숙하지만 각각 소외되어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버스가 갖는 친근하지만 낯선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외국에 다녀왔더니 버스가 낯설어졌던 경험이 있다.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어느 한 순간 낯설어지게 마련이다. 익숙해지다가도 낯설어지고 다시 익숙해지고...를 반복하는 무의식적인 행위를 표현하기 위해 버스, 정류장이라는 공간을 끌어 왔다. 처음에는 재섭과 소희의 시선을 병치하다가 후반부에서는 하나로 묶어내는 영화 형식도 그런 맥락에 닿아있다.
Q: 김태우는
A: 사실 매작품마다 그런 느낌을 갖는다. 영화를 시작할 때 매번 새로운 영혼을 창조해 내야 하므로. 이번 영화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연기를 했다. 나는 내가 맡은 인물이 되려고 하는 편인데 [버스, 정류장]에서는 그 인물이 나에게 오게 하고 싶었다. 즉, 재섭이 나에게 묻어나기를 바랬다. 새로운 방식이기 때문에 만족도를 측정할 수 없지만 소중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