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얄 테넌바움>은 한 특이한 가족의 해체와 화합을 웨스 앤더슨 감독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그려보이는 영화이다. <빌 머레이의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에서 그만의 재기 발랄한 유머 감각을 보여준 웨스 앤더슨 감독은 <로얄 테넌바움>에서 그의 재능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로얄 테넌바움은 한때는 잘나가는 변호사였지만 불성실한 아버지와 남편으로서 가족들에게서 쫒겨난 후 호텔을 전전하면서 살아간다. 그와 그의 아내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세 명의 자녀가 있다. 채스는 10대 초의 나이에 부동산 투자 전문가가 됐고 입양된 딸인 마고는 15세 때 극작가로 활동, 퓰리처 상까지 수상한다. 리치는 주니어 챔피언 테니스 선수이며 3년 연속 US 오픈 타이틀을 획득한 경력이 있다. 천재였던 이들 세 남매는 부모의 별거로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고, 그 동안의 배신과 실패로 이들의 천재성은 사라져버린다. 22년이 흐르고 돈이 다 떨어지자, 로얄은 생계를 위해 가족들에게 돌아가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지난 세월동안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가족들은 쉽게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마고는 여전히 어렸을 때 입었던 것과 똑같은 원피스를 입고 머리핀을 한다. 이것은 그녀의 인격 형성이 어렸을 때 이루어졌으며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아내의 비극적인 사고로 안전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채스와 그의 아이들은 빨간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고 다니고, 누나의 결혼에 대한 충격으로 세계를 떠돌며 방랑하는 리치는 이미 선수 생활을 그만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테니스용 머리띠를 두른다. 이러한 설정은 웨스 앤더슨 감독이 시도한 캐릭터의 구축이자 인물들의 성격을 상황이나 사건을 통해 설명하는 대신 그 인물에 대한 설정을 겉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관객들에게 그들을 이해시키는 새로운 방법이다. 심지어 이 가족을 동경하는 리치의 친구 엘리조차도 약한 자신감과 초라함을 감추기 위해 남성적인 힘을 상징하는 카우보이 복장을 입는다.
아버지로서도, 남편으로서도 충실하지 못한 로얄의 행동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래도 관객들은 그를 동정하는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허풍으로 가득찼던 그가 22년만에 가족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던진 돌은 가족들에게 잔잔하지만 결국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큰 파문이 된다. 이 화합의 과정은 직설적이고 함축적인 대사와 MTV의 뮤직 비디오를 보는 듯한 빠른 템포의 영상으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기쁨을 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고급스럽고 철저하게 뉴욕 지향적인 영화는 뉴요커가 아닌 우리들에게는 낯설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또 10개의 장을 통해 인물들을 세세히 설명해주는 친절에도 불구하고 결말 부분은 너무 평이하게 끝나 그렇게 공을 들여 보여준 캐릭터들에 대한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다. 무언가 정말 기대했던 것을 보여줄 것만 같았던 쇼가 진행될수록 기대를 증폭시킨 후에 그냥 끝나버렸을 때.. 이 허전함은 아무래도 진 해크만의 뛰어난 연기를 보는 기쁨으로 달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