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아마 꼭 한 번쯤은 창공을 가로지르는 새의 힘차고 유연한 실루엣에 넋 놓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공중을 떠도는 그 도도한 날갯죽지 위에 보석같은 햇살이 바스라질 때나, 애잔한 석양이 곱게 번질 때면 땅이 꺼질 듯 큰 숨으로 대지에 붙박인 인간의 운명을 탓해보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발목에 매인 중력의 악착같은 손아귀를 가뿐하게 떨구고 홀홀하게 펄럭이는 '새'란, 그래서 '자유로운 영혼'을 상징해 왔다. 그러나, 인간을 넘어 비상하는 그들마저 닫힌 곡선 속에 가두어버리는 이 수상한 영화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지방대 영화과 교수 '김'. 꿋꿋한 선비정신으로 돈 안 되는 독립영화를 고집하는 그는 분명 이상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를 홀가분히 놓아주지 않는다. 교수라는 고상한 허울 뒤에는 빚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히고, 길거리에서 침을 뱉다 벌금을 물고, 떠돌이 아이에게서조차 욕을 먹는 초라한 소시민이 웅크리고 있다. 더욱이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서 구속 없는 위안을 찾는 김의 삶은 금새라도 깨어질 듯 위태롭게 그려진다. (그는 이름조차 잃어버린 지 오래다)이런 상황에서 김이 집착하는 것은 새의 이미지이다. 덜컥덜컥 화면을 불안하게 흔드는 인간의 응축된 몸부림이 폭발하여 결국 훨훨 솟구쳐 오르는 가벼운 날갯짓. 그는 구원을 꿈꾼다.
전수일 감독이 실제 영화과 교수라 그런지, 이 영화는 마치 교과서 같은 느낌을 준다. 반복해서 사용되는 정지된, 느린, 좁은, 평행한, 안정된 구도는 주인공의 답답한 감정을 충실하게 대변한다. 그리고 불쑥 튀어나오는 핸드 헬드 기법의 떨리는 화면과, 몽롱한 음악, 사선 구도는 불안한 상황을 보조해 준다.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주된 상징 '새'도 여러 모습으로 적재적소에 안배되어 있다.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는 그 농축된 철학의 무게에 많은 사람이 지레 겁먹을 법한 영화이지만, 막상 뜯어보면 그렇게 난해하지 않다. 감독은 결코 만만치 않은 절망의 중력을 맑게 내비친다. 익숙한 상징과 표현 방법을 활용해 주제를 쉽게 풀어주는 것이다. 하긴, 부작용이 있긴 하다. 영화와의 소통에 성공한 관객에겐 김교수의 묵직한 절망에 감염되어 호흡곤란 증세가 나타나는 위험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박하사탕],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공공의 적] 등에서 이제 더 이상 마를 침도 없이 칭찬 받았던 설경구가 김교수 역을 맡았다. 나도 목 한 번 더 축이고 털어놓자면, 그는 새로운 카리스마의 영역을 구축해 나가는 배우로 이 영화에서도 험난한 역할을 잘 배겨낸다. 텁텁하고 차분한 몸짓이며 말투 속에 섬뜩한 냉소와 초췌한 고집, 가녀린 불안마저 이토록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는 배우가 몇이나 될까.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는 절망을 노래한다. 주인공의 구원받고자 하는 희망은 옹골찬 벽들에 사정없이 부딪혀 와락 떨어져 내리기만 하기에 이 영화는 끝으로 갈수록 더욱 짙은 절망을 드리운다. 그렇다고 다만 해결 의지 없는 비관주의로 몰기엔 이 영화, 현실을 너무 예리하게 터득하고 있다. 이상으로 향한 희망이 있기에 한층 까마득한 절망을 경험하는 현실, 그것이야말로 인간 삶의 진정한 작용-반작용 법칙이 아니던가. 그래서 이 영화는 끊임없이 솟구쳐 오르려는 헛되고, 치열한 인간 의식에 대한 존경과 연민의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