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산한 분위기에서 자금자금 밟히는 긴장과 불안, 관객을 KO시키는 '뒤통수 효과(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 상식이 뒤집히고 혼란스러워 극도로 멍한 상태를 이름)'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면? 맛있는 영화를 먹기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관객들 눈이 번쩍 뜨일 만큼 그야말로 최상급 호러 무비가 탄생하는 거지, 뭐. [얼론]도 그걸 노렸나보다.
우선 음산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 영화는 어둑한 화면을 조성한다. 화면 가득 감도는 탁한 푸른빛은 오슬오슬 한기를 풀어내는 데 안성맞춤이다. 게다가 주인공의 삭막한 상황(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과도 제법 어울린다.
강박증은 또한 불안과도 관련이 있다.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져 버릴 듯한 불안감. 영화에서 불안감은 주인공의 내면 독백과, 주인공의 시점에서 와들와들 떨리는 핸드 헬드 기법의 화면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영화 전체의 1인칭 설정은 불안한 심정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으로 쓰인다.
자신의 의도를 표현해 내기 위해 화면의 색감과 사운드, 으스스한 독백 처리, 핸드 헬드 기법 등을 사용한 것만 보아도 이 영화의 감독 필립 클래이든은 24세라는 젊은 나이에 걸맞게 상당히 감각적인 테크닉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MTV를 너무 많이 보며 자랐음이 틀림없다. 겉은 화려하고 역동적이지만 속은 뚝뚝 토막난 뮤직 비디오처럼, 오감을 자극하는 형식에 비해 정작 [얼론]의 내용은 밍밍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바로 '반전'에 이르러 드러난다. 단지 '알렉스'라는 이름으로만 그 정체성을 추측해 볼 수 있던 주인공의 실체를 막판에 폭로함으로써 관객의 고정관념이라는 허를 찌르고 싶었던 모양인데, 안타깝게도 그 반전은 뚜렷하게 폭발하지 못한 채 모호하게 흐려진다. (실제로 영화 시사회 후, '엥? 도대체 저게 뭐지?' 의아함이 가득한 수군거림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내 나름대로 정리한 결말에 따르자면, 이 영화는 인간의 phobia를 노린 것 같다. 어떤 원인도 없는 막연한 공포가 의식 깊숙이 자리 잡으면 얼마나 두려울 수 있는지. 의도도 설정도 무난했다. 포장도 화려했건만, 그 속까지 꼭꼭 알차게 채우기엔 아직, 젊은 혈기도 역부족이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