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싶은 미미. 오늘 우연히 <걸스 온 탑>이라는 영화 시사회장을 다녀왔어. 그냥 아무생각 없이 섹스 코미디라는 말에 혹하니 넘어가서 친구녀석이랑 같이 가서 봤는데, 솔직히 지금 놀래서 가슴이 두근반 세근반 뛰고 있어.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 할까? 너도 섹스 좋아하니? 음.. 나는 남자라서 여자들은 어떤지 내가 새로 여자로 태어나지 않는 이상은 알 수가 없쟎아. 영화를 보니까 이제 고작 18세가 된 소녀들이 어떻게 하면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사실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더라구. 지난 번에 너랑 같이 보면서 내가 민망해 했던 영화 <아메리칸 파이> 생각나니? 너랑 같이 이 영화를 봤다면, 너도 내가 민망해 했던 것 처럼 얼굴이 붉어졌을까? 이 영화에선 여자 주인공이 안장이 높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처음으로 오르가즘을 느끼거든... 길 한가운데서 신음을 토하며 신호등을 붙잡고 헉헉 거리는 장면에서는 뭐라고 할 말이 없더라구.
우리나라 성교육이 문제라는 말을 여러 번 듣긴 했지만, 어쩐지 독일도 우리나라 못지 않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 아니 그 이상이라고 해야하나? 물론 어른들이 성담론을 자식들과 아무렇지 않게 즐기는 것은 필경 우리와는 다른 문화겠지만, 역시나 섹스에는 무지하고 단지 궁금증의 대상으로 치부되는 모습이 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 영화의 완성도 문제가 있어서 그런것일까? 영화 내내 여러 개의 에피소드가 쏟아져 나오는데,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섹스 이야기만 쏟아져 나와서 별로 였거든... 미미 너보다 예쁜 여자들이 나오는 것도 아니구...
섹스란게 왜 이런 식으로 우스꽝스럽게 농담화 되는지 모르겠어.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성간의 만남은 단순히 한번 스쳐지나감이 아니라 뭔가 진중하고 신비롭고 또 특별한 뭔가가 있을거라고 생각하거든. 요즘 유행처럼 보여지는 섹스코미디들은 하나같이 성(性)을 노리개 이상도 이하도 아닌 모습으로 포장하쟎아. 그게 아무생각 없이 볼 때는 웃긴데 보고나면 항상 사람을 공허하고 바보스럽게 만드는 것 같더란 말이지... 여자들의 섹스 이야기라는 컨셉이 뭔가 여성들의 섹스 심리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내게 <걸스 온 탑>은 야하지도 않고 솔직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웃음보가 터질만큼 웃기지도 않은 민망한 영화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생각이야.
좀더 솔직한 섹스 이야기를 그린 영화는 없을까?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방법 밖에 없는 것일까? 누군가가 좀 가르쳐 줄 수는 없는 걸까? 지난해 <팬티 속의 개미>라는 영화를 만들어 냈던 독일이 이번엔 "브라 속의 거미"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걸까? 컨셉은 좋았는데, 정말 아쉽다...
미미의 답장
토토야 편지 잘 받았어. 그거 아니? 여자도 사람이란 것을. 우리도 너희 남자들 처럼 당연히 섹스에 관심이 있고 여자들 끼리 만나면 섹스에 대한 담론을 나누곤 한단다. 섹스는 숨겨서 될 문제는 아닌 것 같아. <걸스 온 탑>을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내용이야 어떻게 되었든 여성중심의 섹스 영화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획기적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만큼 여성들의 지휘가 올라갔다고 생각하고 싶어. 여튼 넌 그 영화 봤으니 나는 나중에 라라랑 둘이 보러 가야겠다. 고마워 좋은 정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