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러닝 타임은 2시간 33분이다. <반지의 제왕>은 3시간이 조금 모자란다. <공공의 적>의 러닝타임도 2시간 10분 정도 된다. <바닐라 스카이> 역시도 2시간 15분 가량 되며, <무사>는 154분,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아프리카> 역시도 꼬박 두시간이 넘는다.
영화기술이 발전하면서 상상으로 끝났던 영화적 표현들이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현실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 동안 감춰왔던 욕망을 들춰내기라도 하듯이 계속 새로운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도들은 판타지란 장르와 맞물리는가 싶더니 이제는 판타지 뿐만 아니라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등 다양한 장르에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렇게 되다 보니 이제는 쉬쉬하려 했던 특수효과 장면들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심심치 않게 영화 이곳 저곳에 심어 놓는가 하면 그로 인해 영화의 러닝타임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영화의 길이기 길어지는 것에 대해 나쁘다고 이야기 하고 싶지는 않다. 감독의 욕심이 많은 탓이겠지. 혹은 그만큼 볼 거리가 많겠지 하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영화의 길이가 길다고 해서 영화의 퀄리티가 높아진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이유도 없이 영화를 이만큼이나 엿가락처럼 늘린다고 나쁜 영화가 좋은 영화가 되란 법은 없다는 말이다. 가까운 예로 <화산고>의 경우 화려한 볼거리가 풍성하고 한국영화 테크놀러지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나 지나치게 영화를 길게 늘인 나머지 실제로 집중해서 영화를 즐기기에는 지루하다는 평이 많았다. 혹자는 지나친 동어반복으로 액션신이 한참이나 쏟아져 나오는 영화 중반에 졸음이 밀려올 정도였다고 한다. 간결한 스토리 만큼이나 핵심만 보여주는 전략을 택해 러닝타임을 15분만 줄였던들 <화산고>에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이 반 이상은 줄어들지 않을까.
영화가 이다지도 길어지다 보다 극장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장장 2시간 ~ 3시간 동안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관객들은 보다 안락하고 편안한 상영관을 선호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멀티플렉스가 호황을 누리는 까닭은 물론 선택의 폭이 단관 극장보다 다양하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최근 생겨났다는 이유로 보다 쾌적하고 안락한 시설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예를 들어 <반지의 제왕>을 드림시네마와 스타식스 정동에서 동시 상영한다고 한다면 어디서 영화를 보고 싶을까 하는 것이다. 극장들이 개보수 작업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 지사가 되었고 아무리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극장이라 해도 시설이 따라주지 않으면 도태되는 현실을 맞이하게 되었다.
영화가 길어지면서 또 한가지 아쉬운 점은 하루 보통 5 ~ 6회 상영하던 시간표가 4회도 어렵게 될 정도로 시간이 빠듯해 졌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시내 중심가에서 영화를 보고 변두리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감안하기 위해서는 마지막 회는 큰 마음을 먹지 않고서는 보기도 힘들어졌다.
영화의 길이를 두고 뭐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우습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일단 긴 영화에 익숙해진 관객들은 기존 80 ~ 100분 정도의 영화를 접하게 되면 어쩐지 속은 것 같고 돈이 아까운 것 같고 때문에 소위 본전을 뽑기 위해서라도 긴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무서운 영화2>가 러닝타임이 83분이라는 믿지 못할 보도자료를 내 놓은 것도 조금이라도 영화를 늘리기 위한 방편으로 보이며(필자가 시간을 확인해 본 결과 광고를 다 포함하면 83분쯤 되는 것 같더라), 애니메이션의 경우도 이제는 예전 작품들에 비해 10분에서 15분 가량 늘려 제작하고 있는 실정이다.
성인이 한가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겠지만 보통 1시간 안팎이라고 한다. 2시간 동안 관객의 시선을 스크린에 잡아두기 위해 영화사들이 쓰는 전략은 비교적 단순해 보인다. 잔인하거나 야하거나 혹은 지금껏 보지 못한 거대한 스케일의 화면을 담아내는 것이다. 제작비는 날로 늘어날 것이고 본전을 뽑기 위해서라도 영화 속에는 이런 저런 이야기가 모두 담기게 될 것이다.
<지옥의 묵시록:리덕스> 처럼 세시간 이상을 억지로라도 몰두해야 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고 <반지의 제왕> 처럼 아예 3년에 걸쳐 계속 나누어 봐야 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아니면 극장에서 미니시리즈를 방영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악순환의 연속이다. 보여주기 위해 긴 영화를 만들고, 긴 영화 덕택에 멀티플렉스는 배를 불리고, 긴 영화에 익숙해진 관객들을 위해 다시 영화사는 러닝타임을 늘리고, 늘어난 영화에 집중을 도모하기 위해 엄청난 제작비를 투입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고? 길게 질질 늘여서 이야기 하지 말라고? 요는 이렇다. 한국영화도 돈이 되고 테크놀러지가 발전하다 보니 돈들인 티가 팍팍 나는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돈을 들였으니 들인 만큼 보여 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돈을 들인 영화는 아마도 러닝타임도 길 것이라는 엉뚱한 기대. 이로 인해 벌어진 다양성이 결여된 멀티플렉스의 횡포. 이런 모든 것들을 지양하고 줏대를 가진 영화들이 나왔으면 하는 것이 하고싶은 말이었다.
더 이상 <진주만>같은 혹은 <무사> 같은 어설픈 종합선물 세트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