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독들 중에는 영화에 사용되는 음악에 남다른 애착을 보이며 뛰어난 선곡과 영화와의 환상적인 조화를 꾀하는 이들이 종종 있어왔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는 [펄프 픽션]에서 70년대의 팝사운드를 완벽하게 부활시킨 '쿠엔틴 타란티노'와 [중경삼림] 에서의 '몽중인', [타락천사]에서의'망기타' 로 우리의 뇌리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왕가위' 감독이 바로 그들이다.그리고 바로 여기... 그들 못지않는 음악적인 감각을 소유한 감독이 있다.바로 [바닐라 스카이]의 '카메론 크로우' 감독. 이미 전작들에서 그의 영상과 영화음악과의 특별한 관계를 보여준바 있는 그는 이번 [바닐라 스카이]에서도 예외없이 감각적인 영상과 그에 걸맞는 17곡의 음악을 모아놓은 사운드트랙을 들고 우리앞에 다가왔다. 카메론 크로우의 전작들을 잠시 살펴보자면... 그의 92년작 [클럽 싱글즈] 에서는 싱글즈중에 한 명인 멧 딜런이 '시티즌 딕' 이라는 메탈밴드 보컬로 분하며영화내내 메탈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뭐니 뭐니해도 그의 음악사랑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2000년도에 발표되어 비평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던 작품[올모스트 훼이모스] 이다. 감독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알려져 더욱 화제가 되었던 이영화는 바로 7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락그룹에 경도된 10대 소년의 성장기를 그린 음악영화.한사람의 음악팬으로서 카메론 크로우의 작품은 영화 그 자체로서도 무척이나 기대되어지지만 그 영화의 사운드트랙 역시 너무나도 설레여지게 된다.이제 흥분된 기분을 가라앉히고 [바닐라 스카이] OST 에 수록된 17곡을 차분히 살펴보기로 하자~
1번 트랙은 R.E.M 의 'All The Right Friends' 가 자리하고 있다. 미국 얼터너티브 락계의 대부격인 R.E.M 의 1987년도 앨범인 [Dead Letter Office / Chronic Town]에 수록되어 있는 이곡은 R.E.M 의 초반기 사운드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감회가 새로운 곡이다. 근래의 연륜과 경륜이 쌓인 그들의 작품답지 않게 College Rock 의 전형적인 밝은 사운드와 가사로 앨범의 포문을 열고 있다. 다음은 대표적인 영국출신 모던락 밴드 Radiohead 의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 를 들을 수 있다.2000년도에 발표된 [Kid A] 에 수록된 이곡은 영화의 신비스러운 비밀을 암시하는 듯한 매혹적인 사운드가 일품인 트랙이다.내면에 잠재해있는 다양한 감정을 꿈꾸고 있는듯한 사운드로 승화해가는 Radiohead 의 이 곡이야 말로 영화 내내 들려오는 "Open Your Eyes" 라는여성의 나레이션과 함께 영화의 분위기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곡이 아닌가 생각된다. 살아있는 전설 Paul MaCartney 의 'Vanila Sky' 는 영화 사운드트랙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작품이다.어쿠스틱 기타 한대에 의존해 나지막하게 불러대는, 그다지 곡의 기복이 크지않은 차분한 느낌의 곡이다. 6번 트랙의 Monkees,The 의 곡 "Porpoise Song" 은 이 앨범에서 놓쳐서는 안될 백미중에 하나이다.1966년 Beatles,The 의 인기에 편승하여 만들어진 동명의 TV 시트콤 [The Monkees]에 뮤지션으로 출연하기 시작햐며 자연스럽게 결성되어진 이 그룹은10대 소녀팬들을 겨냥한, 또한 의도적으로Beatles,The 의 사운드에 의존하고 있는, 아류밴드 정도로 취급되긴 했었지만 60년대 말에 다수의 히트곡을발표였음은 물론이고 나름데로 연주실력도 인정받은 재능있는 팝 그룹이다. [바닐라 스카이] OST 에 수록된 'Pprpoise Song' 은 이들의 밴드 인생 말기에 해당하는 68년 그들의 영화 사운드 트랙인 [Heads] 에 수록 되어 있는 곡이다. 서정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듯한 이 곡은 그들이 결코 한낮 Beatles.The 의 아류밴드만은 아님을 잘 증명해주는 명곡이다.
영화의 예고편과 오프닝에서 들을 수 있는 Looper 의 "Mondo '77' 은 2000년도에 발표된 앨범 [The Geometrid] 에 수록되어 있는 곡이다. 경쾌한 비트가 가미된 테크노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는 이 곡은 영화 전체의 이미지와는 상당한 거리가 느껴지기는 하지만 영화의 초반, 톰 크루즈의 멋지기만한 뉴욕 대도시에서의 삶을 표현하기에는 전혀 손색이 없는 곡이다.
그 다음으로 우리가 듣게 되는 곳은 Slow - Core (슬로우 코어) 포크 뮤직의 대표주자인 Red House Painters 의 "Have You Forgotten" 이다. 현재는 마크 코즐렉(Mark Kozelek) 이라는 이름으로 솔로 활동을 하고 있는 이 뮤지션은 작년 가을 국내에서 깜작 공연을 하기도 했던, 열혈 컬트팬들 거느린 인디 락계의 거물이기도 하다. [바닐라 스카이] OST 에 수록된 트랙중에 Sigur Ros 의 곡과 함께 가장 의외성이 짙은 이 곡은 1996년도에 발표된 앨범 [Songs For A Blue Guitar]에 수록되어 있기도 하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Have You Forgotten" 이란 곡은 톰 크루즈 테마로 가장 적합한 곡이 아닌가 생각된다. 상실로 인한 슬픔과 상실에 대한 욕구로 괴로워하는 심정을 잘 묘사한 곡이라 하겠다.
17개의 곡중 Radiohead 의 곡과 함께 신비로움의 극치를 머금고 있는 곳이 11번 트랙의 곡, Sigur Ros 의 "Svefn - G - Englar" 이다.
국내에셔는 물론 세계 시장에서도 거의 지명도가 없는 이들은 세계 팝시장에서는 극히 비주류에 속하는 남미권 언어로 더할나위 없이 아름다운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국내에서 그들의 앨범을 접하기란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것보다 힘든 일이지만 그들의 중독성 강한 음악으로 인해 상당한 컬트팬이
집결해 있기도 하다.
http://www.freechal.com/sigurros/ 이곳이 그들의 집결장소.
극중 소피아(페넬로페 크루즈)가 데이빗(톰 크루즈)에게 들려주는 곡으로 삽입되었던 음유시인 Jeff Buckley 의 곡 "Last Goodbye" 가 13번째로 들려온다. 팀 버클리 라는 불세출의 뮤지션의 아들이기도 한 그는 음악에 대한 천재적인 재능과 자신만의 미학으로 그 누구도 엄습할 수 없는 영역을 확고히 했다. 1997년 불운의 사고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그는 고작 단 하나의 앨범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적 영향력은 거의 모든 뮤지션과 음악 매니아들을 아직까지도 사로 잡고 있다. '신에 가장 근접한 목소리','당신이 죽기 전에 반드시 사야할 음반' 등등 그에 대한 찬사는 오늘날에도 끊이질 않고 있다.
이외에도 영국의 대표적인 프로그레시브 락 그룹 "제네시스" 출신의 피터 가브리엘의 곡 "Solsbury Hill", 허스키한 보컬톤이 매력적인 Josh Rouse 의 "Directions", 극중 나이트클럽에서 들려오던 한없이 흥겨운 테크노사운드 "Afrika Shox"... 흑인풍 가스펠을 연상시키는 Todd Rundgren 의 "Can We Still Be Friends", 포크락의 아버지 Bob Dylan 의 하모니카 연주가 매력적인 "Forth Time Around", 유일한 연주음악인 Nancy Wilson 의 "Elevator Beat", 1번 트랙에 이어 또 하나의 트랙으로 참여하고 있는 R.E.M 의 "Sweetness Follows"... 그리고 앨범의 마지막은 영국출신 빅비트 테크노 밴드 Chemicla Brothers 의 "Where Do I Begin" 가 장식하고 있다.
어느 한곡 버릴것이 없는 꽉 차여진 17곡의 트랙 리스트이지만 아쉽게도 극중에서 들여오던 몇몇곡이 리스트에서 제외되어 있기도 하다. 한때 알라니스 모리세이와 함께 여성파워를 주도했던 죠안 오스본의 "One Of US" 와 영화 마지막에 모든 진실을 알게된 데이빗이 감정 폭발을 일으키던 장면에서 삽입되었던 Beach Boys 의 "Good Vibrations" 이 그것이다.
전형적인 미국 메이져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만들어진 블록 버스터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사운드트랙 앨범에서는 시대와 공간, 그리고 주류와 비주류의 벽을 허무는 과감한 선곡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만든다. 카메론 크로운 감독 개인의 음악적 열정과 감각에 의해 탄생한 [바닐라 스카이] OST 앨범은 영화사운드 트랙으로서 갖는 의미 역시 크지만 음악사적인 의미에서만 보더라도 무척이나 매력적인 작품임에 틀림없다. 비록 영화음악만이 갖을 수 있는 매력인 오리지널 스코어적인 면이 부족한 감이 없지 않지만 17곡 모두 영화의 이미지를 부각시켜주는데 최고의 선택이란 점에서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