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다. 뭘 알아야 문화생활도 한다. 쉽게 말해, 노는 것도 아는 만큼 하는 거다. 알아야 잘 논다. 현대의 놀이는 나날이 기능이 강조되고, 계급적으로 분화하는 과정에 있지 않나. 우리도 한번, 잘 놀아보세.
바닐라스카이를 더 재미있게 즐기도록 해주는 5가지가 있다. 이 5가지 요소들은 영화 보는 '즐거움'을 각각 최소한 2배씩은 더해줄 거다. 장담한다. 기술순서는 가나다순으로 한다. (일부 독자들이여, 제발 사소한 걸로 걸고넘어지지 좀 마시라. 필자는 유희정신과 반 지성주의로, 쓴다.) 유치하게 '재미있게 보는 법'이 웬말이냐고? 어차피 영화는 예술이라기보다는 산업이고, 사유/반성하는 형식이라기보다는 소비/탕진하는 오락이다. 슬프지만 (과연 누가 정말 슬퍼하기는 하는가, 모르겠다.) 진실인 셈이다. 헐리웃이, 자본이 벌써 영화를 그렇게 정의했고, 결론을 내지 않았던가...
1. 감독
이건 사족인데, [올모스트 훼이모스]의 록밴드는 아마 레드제플린을 모델이 아닌가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본다. 영화 속에 몇몇 강력한 암시가 있다. "Rain song"이 쓰인 장면 등...
2. 소문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만의 농밀한 정사장면을 기대하며 설레는 가슴으로 극장을 찾은 게 (엊그제 같은) 작년인데, 올해는 페네로페 크루즈의 젖꼭지를 보게되는구나!" 이런 흐뭇한 감격에 눈시울까지 뜨거워진(?) 사람이 분명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그래? 페네로페의 젖꼭지가 나온단 말이지..."라며 입맛 다실(??) 독자동지들의 모습, 눈에 선하다. 90년대 후반 미국연예산업이 그 상품성을 발견해 밀기 시작했고, 벌써 우리에게도 섹스심벌로 자리잡은 (특히 스페인과 푸에르토리코 출신) 라틴스타들. 이제 그들의 이미지는, 단순한 섹스심벌을 넘어서기 위한 확대재생산이 요해지는 단계에 이르렀다. 해서 귀엽고 참하지만, 어딘지 모르는 섹시함을 풍기는 페네로페 크루즈가 그 선봉에 나선 거다. 헐리웃의 왕자 톰 크루즈의 든든한 파워를 등에 업고.
니콜 키드만이 전형적인 바비 인형의 차가운 이미지를 내뿜는 미모라면, 페네로페의 그것은 대조적으로 인간적인 따스함과 친밀함을 풍긴다. 이런 그녀의 과감한 노출 소식은 한국남성들에게도 미묘한 성적환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두 크루즈가 연인사이라는 사실은, (영화와 현실을 헷갈리고 싶어하는) 순수한 우리네 여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할 거다.
3. 스타
역시 스타시스템의 힘은 건재하다. 우리의 영웅 톰 크루즈도 건재하고, 오픈 유어 아이즈의 역할과 연기를 재탕하는 페네로페 크루즈 역시, 화제의 중심에서도 흔들림 없이, 건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카메론 디아즈가 건재하다! "베리 베드 씽"에서 선보였던 특유의 악마적인 모습은 정말 소름끼치도록 건재하다. 백치의 코믹함과 자유분방한 사이코를 뒤섞은 그녀의 이미지는, 언제나 사랑스럽다. 단, 커트 러셀이 그레고리 팩의 재림이라는 라스트의 농담은 정말 썰렁했다.
4. 음악
영화 초반, 우리의 주인공 데이빗 에임스(톰 크루즈 분)는 우리가 꿈꾸는 아메리칸 드림의 최정상에서 인생을 즐긴다. 고급 승용차와 늘씬한 미녀들 그리고 연일 이어지는 파티... 잘 나가는 우리의 주인공 에임스마저 친구 앞에서 거들먹거리고 잘난 척하는 데에 라디오헤드를 써먹는다. (라디오헤드는 이런 현실에 냉소할 것이나) 이런 판국에 우리가 어찌 음악을 모르고 영화를 논하리.
5. 재탕
한마디로 이거다. 헐리웃 리메이크에 무엇을 바라랴.
세자르를 휩쓴 [마틴 기어의 귀향] 은 필자가 무척 감명깊게 본 영화였다. 프랑스 국민배우 "제라르 드빠르듀"의 연기도 좋았지만, 그 섬세하면서도 힘있는 전개는 참으로 일품였다. 그러나 [서머스비](리처드 기어 주연)는 정말 봐줄 수가 없더라. 그건 리메이크가 아니라 원작훼손이었던 것이다. 헐리웃은 외국의 좋은 원작 가져다가 망쳐놓는 데에는 선수 급이다. 필자가 진정으로 존경하는 작가 빔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를 싱거운 멜로드라마로 만든 [시티 오브 엔젤]이나, 고다르의 걸작 [네 멋대로 해라]를 싸구려 에로물로 변조한 [브레드레스](공교롭게도 또 리처드 기어 주연)는 또 어떤가. [네프므와]와 [나인먼쓰] 등... 이런 사례는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스페인 영화 [오픈 유어 아이즈]를 리메이크 한 [바닐라스카이]는 이런 실수를 되풀이하지는 않는다. 외려 전례를 거울삼은 듯, 지나칠 정도로 안전하게 간다. 원작을 거의 반사적으로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모사하고 따라간다. 섣부른 변주나 새로운 시도 따위는 없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했다. 그러나 빔 벤더스의 어머니가 빔 벤더스가 될 수는 없고, 고다르이의 어머니가 고다르는 아니듯이, 모방 자체가 창조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실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원고료 몇 푼만 아니면. 흐흐... 미안하다.) 카메론 크로우의 [바닐라스카이]나 구스 반산트의 [사이코]는 마치, 어릴 적 했던 "발자국 밟기" 놀이 같은 작업이 아니었을까.
누구라도 이런 경험이 있을 터. 눈 내리는 겨울밤을 지난 아침은 온통 딴 세상이다. 눈부신 별천지의 하얀 눈길에 홀로 뻗어있는 누군가의 발자국. 그 홀연함은 풍경의 일부로써 아름다우며, 그 누군가의 부지런함은 당신을 숙연하게 한다. 어린시절의 필자는 그런 아침이면 그 누군가의 발자국을 따라 조심스레 발을 옮기곤 했다. 섣부른 족적으로 그 풍경을 다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은 적어도, 순수하다. 그 누구도 그런 마음을 함부로 욕할 수는 없다. 감독의 저력을 믿는 필자는, 이 영화가 그런 마음의 발로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