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없는 가짜 낙원
20세기 문화예술의 가장 치열한 주제 중 하나가 "낙원상실(혹은 실낙원)"이었다면, 21세기 뉴밀레니엄에 그 화두는 "가짜낙원(혹은 가낙원?)"으로 거듭날 것이다. 태초에나 (혹시나마) 존재했을 지 모르는 그놈의 에덴동산... 이상향에 대한 그리움은 인간의 유전자에 각인 되어 있지는 않았음이 틀림없다. 혹은 진화의 과정 속에, 이미 오래 전에 지워져버렸거나.
현대인은 더 이상 유토피아를 꿈꾸거나, 그리지 않는다. 이 지상에 낙원은 없다는 것을 벌써 알아버렸기 때문에. 그러면 남은 것은? 바로 지금의 현실세계에 최대한 낙원에 가까운 곳을, 또는 낙원을 만드는 것. 그러나 가짜는, 숙명적으로, 공허하다.
"라스베가스"만큼 이런 가짜/인공낙원의 전형을 잘 구현한 곳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베가스를 배경으로 하는 많은 영화들이 슬프고, 그런 영화들은 거의 수작이더라. [리빙 라스베가스] [카지노] [벅시] 등등... 내가 아는 즐거운(?) 라스베가스 영화라고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비바 라스베가스]와 니콜라스 케이지의 [허니문 인 베가스] 뿐이다. 하긴, 처연할 정도로 황량한 그 사막 위 지어진, 눈을 찌르고 영혼을 빼놓는 화려함이라니.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보다는 [파리텍사스]에 가까운...
리차드는 플로렌스에게 함께 라스베가스에 가자고 말한다. 사흘을 함께 보내는 대가로 만 달러를 주겠다면서. 망설이던 플로렌스는 몇 가지 규칙을 조건으로 단다. '삽입하지 말 것, 입술에 키스하지 말 것, 시간은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만.'
라스베가스의 초특급 호텔의 더블 스위트룸. 하나는 리차드의, 또 다른 하나는 플로렌스의 방이다. 밤 10시. 초조하게 플로렌스를 기다리던 리처드 앞에, 그녀는 서서히 방문을 열고 등장한다. 상상을 넘어서는 그녀의 테크닉에 리처드는 완전히 압도당하게 된는데...
멋지다. 굳이 연상하자면 [파리 텍사스]를 들, 감동적인 영화다.
가짜낙원에선 사랑도, 오르가즘도 가짜일수 밖에 없다. 심지어 전화기마저도.(바나나를 들고 통화하는 주인공들을 보라!) 특히 플로렌스가 "진짜 오르가즘을 보여주겠다"며 리차드 앞에서 자위를 하는 라스트는, 가짜가 진짜를 대체하고, 주객마저 전도되어버린 지금의 현실을 발가벗겨 보여준다. 필자는, 가슴이 아파 차마 맨눈으로는 볼 수가 없더라.
세상은 어디로 가는가
무엇보다 [센터 오브 월드]는, 후기산업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가는 과도기에 있는 지금, 세상과 그 중심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이야기한다. 세상의 중심은 인터넷, 여성성(그러나 피폐된다), 폐쇄적 개인중심주의와 극도의 물질만능주의로 이동 중이라고. 가슴을 열어보라. 이 영화의 목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래서 가슴이 아플 것이다.
* 아주 긴 사족
("와니와 준하"에 이어) 또 한번 극장풍경에 대한 얘기를 좀 해야겠다. 이번에도 역시, 무비스트 리뷰어로 활동 중인 "리도" 씨, "우진"과 함께 영화를 보았다. 지난번 리뷰(궁금하신 분은 "와니와 준하" 리뷰를 거들떠보시길)에서 자기들을 팔아먹었다며 조금 삐쳐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쓸 말이 궁해서 그런 줄 알던데, 절대 오해다. 무비스트 리뷰어 중 나만큼 많은 글을, 길게 쓴 사람은 없는 걸로 안다.(우쭐) 결국 그들은 "또 우리를 팔아먹을지 모른다"며 영화에 대한 언급까지 회피하였으나... 필자가 말린다고 안 할 사람인가. 이번에도 역시 그들의 반응을 채집해냈다. 리도 씨는 "별 거 아닌 얘길 갖고, 젠 채하는 소품"으로 여겼고,(아마 졸았던 모양) 우진 양은 "괜찮았다"고 했지만, 표정은 그게 아니었다. 이런...
그래도 그건 약과다. 정말 사무치도록 슬픈 장면들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여자들은, 왜 영화를 보러온 걸까. 트레인스포팅 등을 보면서도 이런 깨는 상황들을 경험했었기에, 그때부터 적응하려고, 아~트 냄새 풍기는 영화는 되도록 비디오로 보려고 노력중이지만, 그런 여인들은 (그네들 톤으로) 정말, 짜증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