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 스튜디오의 IMAX 3D 영화 <에베레스트>의 개봉이 지금 북미에서 화제다. 미국 영화 산업 관계자들은 프리미엄 상영관을 거점으로 한 <에베레스트>의 새로운 롤 아웃 개봉 전략이 향후 북미 극장가의 개봉 관행에 영향을 끼칠지 주목하고 있다. 롤 아웃은 주로 다양성 영화들이 선호해 온 개봉 방식으로, 적은 수의 스크린에서 영화를 먼저 개봉한 뒤 관객의 반응에 따라 상영관을 늘여가는 방식을 말한다.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와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도 이 같은 전략에 맞춰 북미 관객과 만났다.
지난 주 545개의 IMAX와 PLF(Premium Large Format) 상영관에서 롤 아웃 방식으로 개봉한 <에베레스트>는 개봉 3일만에 756만 달러의 수익을 거뒀다. 영화는 현재 로튼토마토(73%)를 비롯한 리뷰 사이트에서 호평받으며 흥행 기조를 띠고 있다. 미국의 영화산업지 더 랩에 따르면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IMAX 관에서 상영을 시작한 <에베레스트>가 와이드 릴리즈에 앞서 관객들의 입소문을 탄다면 홍보효과가 극대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북미 극장가에서 IMAX에 기반을 둔 롤 아웃 개봉은 2011년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 이후 <에베레스트>가 4년 만에 처음이다. 하지만 <미션 임파서블>은 이미 특정 팬층을 확보한 크리스마스 블록버스터 시리즈인데 반해 <에베레스트>는 더 넓은 관객층에게 호소하는 액션이나 블록버스터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에베레스트>의 이 같은 다소 과감한 시도는 최근 콘텐츠 산업의 환경과 소비 형태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영상 콘텐츠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현 상황에서는 아무리 높은 완성도의 영화라 할 지라도 관객들의 관심을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프리미엄 상영관을 중심으로 둔 <에베레스트>와 같은 배급 전략은 영화의 장점을 극대화시켜 개봉함에 따라 관객들의 긍정적인 입소문을 발생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흥행의 향방을 알지 못한 채 수많은 상영관을 확보해야하는 와이드 릴리즈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더불어 <에베레스트>의 개봉 전략은 영화의 성격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 위압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눈 덮인 에베레스트의 풍광을 전달하기에 IMAX 영화관은 최적의 선택지이자 플랫폼이다. 또한, <에베레스트>의 출연 배우 제이슨 클락, 제이크 질렌할, 조쉬 브롤린, 키이라 나이틀리는 전 세계적으로 연기력으로 인정받는 저명한 배우이기는 하지만 북미 시장에서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배우는 아니다. 따라서 <에베레스트>가 영화의 장점을 극대화한 IMAX 상영관에서의 리미티드 릴리즈로 입소문에 불을 붙일 수 있다면 흥행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더 랩이 보도한 익명의 영화 제작자의 말처럼 IMAX와 같은 프리미엄 상영관을 거점으로 둔 롤 아웃 개봉 방식은 흥행 요소는 갖췄지만 홍보 요소가 충분하지 않은 영화에 적격인 셈이다.
SNS의 확산으로 입소문의 전파가 그 어느 때보다도 빨라진 지금, 와이드 릴리즈가 아닌 500여개의 상영관에서 롤 아웃 방식으로 개봉을 결정했다는 것은 그만큼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작품의 완성도에 자신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관객의 부정적인 입소문으로 순신간에 곤두박질친 <판타스틱 4>와 같은 영화에게는 오히려 독이 될 전략이다. 소니 픽처스의 IMAX 3D <하늘을 걷는 남자> 또한 <에베레스트>와 같은 방식으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연출하고 조셉 고든 레빗이 출연한 <하늘을 걷는 남자>는 <에베레스트>와 마찬가지로 시각적 쾌감 그 이상의 ‘체험’을 선사하는 영화로 알려져 있다.
북미영화 시장과 국내 시장은 물론 규모나 형태에 있어 다르기에 섣부른 비교는 경계해야겠지만 <에베레스트>의 새로운 개봉 방식은 국내 영화산업 관계자들이 분명 눈여겨 볼 만한 사례고,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영화는 이미 극장을 뛰쳐나와 IPTV, 웹 PC, 모바일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소비되고 있고, 이 같은 급변하는 환경에 맞춰 웹툰, 웹 드라마 등 콘텐츠 또한 맹렬하게 세분화되고 있기에 그렇다. 내년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의 한국 상륙과, 콘텐츠와 접목된 IT산업 빅뱅이 진행되는 현 시점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기민한 대응이 요구된다.
<에베레스트>와 같은 북미 시장의 선례를 세심하게 살펴 배급 방식을 다각화하고 관객의 관심과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콘텐츠의 성격에 부합하는 배급 방식인지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사려 깊은 고민이 전제돼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가령, 이십세기 폭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놀라운 재앙을 안겨준 <판타스틱 4>를 두고 배급 전략을 논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최소한의 완성도가 담보돼 있지 않은 영화와 콘텐츠에게 애초 이 같은 전략은 사치스런 호들갑일 뿐이다.
2015년 9월 25일 금요일 | 글_최정인 기자(jeongin@movist.com 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