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딱 순정만화 같은 영화다. 아름답단 말을 하려니, 다소 식상한 요소들이 걸리지만, 이 영화는 분명 예쁘고 투명하다.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애니메이션은 환상적이다. 따스하면서도 섬세한 그 서정, 그야말로 압권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어쩌면 어떤 이들에게는 매우 지루할 것이다. 특히 남자들에겐... 영화 자체에 대한 얘기는 자제하겠다. 캐스팅부터 워낙 화제가 되었던 영화고, 홍보도 잘된 듯 하고, 언론보도도 많았기에, 이 글을 읽으실 정도로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이 있으신 독자라면 작품에 대한 대강의 파악은 끝내셨을 테니. 대신 영화와 얽힌 재미있는 풍경 하나를 전해드릴까 하는데, 그래도 그 전에 영화 내용 정도는 우선 읊어드려야겠지.
와니는 애니메이터. 준하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둘은 사랑하는 사이로, 동거 중이다. 성공보다는 일 자체를 사랑하는 와니는 원화부로 옮기는 문제를 두고 고민하고, 준하는 춘천의 와니의 집에서 지내며, 첫 장편 시나리오 작업을 한다. 데뷔가 늦어지더라도 쓰고 싶은 얘기를 쓰는 게 꿈이다. 그러나 와니의 마음 속엔 지워내지 못한 첫사랑이 있었으니, 바로 이복동생 영민. 어느날 영민의 귀국소식이 전해져오고, 영민을 짝사랑에 마음을 태웠던 소양이 와니와 준하의 보금자리에 찾아오면서, 첫사랑의 편린이 와니의 일상에 파고든다. 준하 역시 첫사랑의 그림자에 흔들리는 와니의 여심을 감지하게 되는데...
본 리뷰 란에 가끔 글을 쓰시는 "리도" 씨와 함께 "와니와 준하"를 보았다. 참, 한 명이 더 있었다. 리도 씨를 비롯한 무비스트 리뷰어들의 총애를 받고 있는 나이만 어린 여자후배 "우진" 양. 그렇게 셋이었다. 영화에 대한 반응은 제 각각이었다. 그 동안 몇몇 영화를 함께 봤었지만 이렇게 각기 반응이 갈리기는 처음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이었다.
우선 "화끈하고 폼 나는 영화" 취향인 필자는, 초반의 애니메이션에 얼굴의 모든 구멍들이 커졌지만, 막상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는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내 몸을 베베 꼬고, 쩍쩍 소리없는 하품을 들이마셨다. 심지어는 영화 중간에 우진의 귓가에 속살거리며 묻기도 했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재미있냐?"
"삶의 결이 묻어나는 영화"를 애호하는 리도 씨는, 시종일관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가장 일반적인 (관객다운 교양을 갖춘) 관객의 태도와 가깝지 않을까. 다소 극의 호흡이 늘어지는 부분에서도 그의 말없는 집중은 깨어질 줄 몰랐다. 그러나 필자가 "형은 안 지루해?"하고 소곤댔을 때, 그는 살찐 목을 부드럽게 목을 가로 저었다. "아니. 지루해."
리도 씨와 대동소이한 취향의 우진 양은 집중 정도가 아닌 몰입을 했다. 필자가 보기엔 신기할 정도로, 너무 재미있게 보더라. "정말 재미있어? 안 지루해?" 이상해하며 묻는 필자에게 '네가 더 이상하다. 영화 좀 보자'하는 표정으로, 짧게 대답했다. "네." 우진 양은, 영화가 끝나고 외려 필자와 리도씨에게 되물었다. "이상하다. 그렇게 지루했어요?"
영화가 끝나고, "왜 그러실까" 갸우뚱거리며 즐거워하는 우진 양. 그 뒤에서, 리도 씨는 "좀 지루하긴 한데, 여자 애들이 무지 좋아하겠네"라고 말했고, 필자는 "지루했다. 남성관객을 너무 무시한 거 아니냐"며 심술을 터뜨렸다. 결국 두 남성은 의견일치를 본 셈이다.
"와니와 준하"에 대한 호평이 주를 이루는 분위기 같다. 사실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 영화는 미흡한 점이 꽤 많지만, 그것들을 상쇄할 만큼 어여쁘고 진솔하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영화의 아킬레스건이 있으니... 바로 캐스팅의 문제이다. 두 배우의 연기야 인정한다해도(사실 필자 개인적으론 시원찮더라) 두배우는, 순정만화의 주인공이 되기엔 이미 눈빛이 혼탁하지 않은가 싶고, 평범한 소시민이 되기엔 배우 본인의 멋이 잘 감춰지지 않는다. 돌 맞아도 할 수 없다. 솔직한 느낌이다.
"와니와 준하"는 연애이야기 임에도 불구, 베드신은커녕 제대로 된 키스신 하나 없다. 소재, 구성, 줄거리 모두 철저히 확실한 표적시장에 맞춰져 있는 듯. 그러니 남자들은 "와, 니 안 주나"의 출시나 기대해봄직하다. "와! 니가 주나!" 혹은 "와니 안주나?" 등... 이 영화를 패러디한 16미리 에로비디오들이 쏟아져 나올 지 모른다는, 그리 터무니없지만은 않은 상상을 해본다. 아마 이런 식이 되지 않을까. 여주인공 이름은 "김이선". 그녀는 현재 자상한 애인과 동거중이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엔 한때 뜨거운 사이였던 옛 애인과의 추억의 그림자가 늘 드리워져 있다. 그래서 추억 속의 베드신은 종종 플래시백 된고, 거기에 현재의 동거생활이 아주 세밀하게 묘사되며, 오버랩 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정사 부분이. 패러디답게 주변 캐릭터들도 그대로 살려낸다. 주변 인물들은 동성애 등에 탐닉하면서, 다양한 볼거리를 충족시켜준다... 으, 나 점점 왜 이러지... 남자들은 가을을 많이들 탄다. 그러나, "와니와 준하" 같은 영화는 종종 일부남자들을 주책바가지에 푼수덩어리로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