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작으로 상영되어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던 [흑수선]이 다시 일반상영작으로 관객들을 찾았다. 일요일 밤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상영관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배창호 감독은 안성기씨와 함께 관객과의 대화를 가졌다. 질문하라는 사회자의 요청에 처음에는 당황해 질문을 아끼던 관객들은 대화가 무르익어 갈수록 스스럼없이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미연, 정준호, 이정재, 안성기의 화려한 캐스팅과 40억원이나 되는 규모의 제작으로 더욱 화제를 불러일으킨 [흑수선]에 대해 관객은 어떻게 느꼈는지 감독은 무척이나 궁금한 모양이었다. 배창호 감독은 영화 상영 전 자신의 영화를 가리켜 "미스테리 스릴러 물"이라고 밝혔다. 그리고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영화가 액션영화인 줄 알고 온 소년이 배창호는 더 배워야 한다고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며 "영화를 어떻게 느끼는지는 관객의 몫"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는 감독의 표정은 영화에 대한 상당한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 Q : 그 전의 감독님이 만드신 영화와 많이 다릅니다. [흑수선]은 [러브스토리], [정]과는 확연히 다른 영화인데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게 되신 겁니까?
▶ A(배) : 몇 번의 영화에서 실패하고 나니 돈을 대겠다는 제작사가 없었다. 그래도 영화는 만들고 싶었고 [정]같은 영화는 그래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저 예산 영화였다. [흑수선]은 제작자가 있으니까(웃음) 뿐만 아니라 상업적 코드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이 영화 모두가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이다.
▶ Q : 김성종 [마지막 증인]을 원작으로 했는데 원작과는 어떤 점이 다른가요?
▶ A(배) : 원작은 20년이나 전의 작품이다. 그때 이 책을 읽고 많이 감동했는데 기본 줄거리에 몇 가지를 더 더했다. 원작과는 범인도 다르고 여러 가지 상황 설정도 많이 다르다. 특히 황 석(극중 안성기 분)이 비전향장기수인 설정도 새로 만든 것이다.
▶ Q : (안성기씨에게) 대사가 거의 없는 연기인데 대사가 많은 것보다 없는 것이 연기하기가 편하십니까?
▶ A(안) : 대사가 없는 걸 훨씬 좋아합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의 범인 역할도 그래서 좋았지요. 대사 없이 내면연기를 하는 것이 훨씬 좋아요.
▶ Q : (안성기씨에게) 이번 연기에서 가장 어려웠던 연기가 있었다면요?
▶ A(안) : 서울역광장에서 굉장히 크게 소리를 치는 장면이 있었어요. 감독님은 콘티에 "영혼에서 울리는 소리"라고 적어 두셨더군요. 영혼에서 울리는 소리는 어떤 것일까 많이 고민했어요. 우선 소리를 크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쩌렁쩌렁하게 서울역 광장사람이 모두 돌아보게 만들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목청을 틔울려고 소리소리 지르고 다녔습니다. 방음이 되는 차안에서요.
많은 관객이 감독에게 영화를 잘 보았다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뭉클했다고 감동의 말을 전했다. 그런데 한 관객이 감독에게 상당히 신경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 Q :감독님 영화를 [꼬방동네 사람들]부터 지금까지 거의 다 봐왔습니다. 이번 영화는 감독님의 모든 역량이 총동원 된 것 같은데 완결성이 떨어집니다. 이런 영화가 어떻게 개막작으로 선정됐는지 알수가 없어요. 그리고 사실성도 떨어지구요. 예를 들어 거제도가 배경인 작품에서 왜 아무도 사투리를 안 씁니까? ( 사실 이 관객의 질문은 "관객과의 대화"라고 할 수 없었다. 부산 국제영화제의 개막작과 폐막작이 흥행성 짙은 작품인것에 대한 질문마저 던졌으니 말이다. )
▶ A(배) : 개막작품에 대한 선정은 제가 할 대답의 성질의 것이 아니군요. 제 영화에 실망하셨다면 어쩔 수 없네요. 어차피 작품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다른 것이니까요. 사투 리를 쓰지 않았던 것은 제 큰 실수이네요. 생각이 짧았습니다.
한 관객의 쓴소리를 끝으로 관객과의 대화는 막을 내렸다. 11시가 넘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들이 배창호 감독과 안성기씨와 대화하기 위해 자리를 지켰고 영화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뜻 깊은 시간이 되었다. 관객들은 아마도 이 짧은 대화를 영화제의 좋은 추억으로 오랫동안 간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