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르텟>을 연출한 더스틴 호프만은 재즈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배우가 되기 전에는 음악에 몰두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흔 살이 넘은 노배우가 ‘노년의 음악가’가 나오는 데뷔작을 만든 건 꽤나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베르디의 오페라를 포함해 구구절절 귀를 즐겁게 하는 익숙한 클래식의 향연은 상당한 즐거움을 선사하며, 실제 연주자들이 영화에 상당수 출연하기도 했다. 특히 토니 베넷이 불러 유명해진 재즈 스탠더드 곡 ‘Are You Havin’ Any Fun?’은 영화의 주제를 가장 잘 드러내는 노래다.
노년의 삶과 예술가, 새로운 인물의 등장, 옛 상처와 갈등, 그리고 공동체의 위기와 극복. <콰르텟>의 소재와 이야기는 보편적이다. 어떻게 보면 관습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큰 틀에서만 관습적이다. 이를테면 비첨하우스에 있어서 운영난과 갈라 콘서트는 하나의 매개일 뿐이다. 그것 때문에 평화로운 일상에 비장함이 감돌거나,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다소 밋밋해질 수도 있었던 영화의 흐름에 재미를 부여하는 건 연출이다. 아름다운 풍경과 인물의 표정을 섬세하게 잡아내는 카메라의 시선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오랜만에 재회한 레지와 진 사이에 흐르는 껄끄러운 기류는 단지 그들이 전 부부였기 때문은 아니다. 결국 두 사람의 인생관의 차이다. 레지는 어린 학생들과 소통하기 위해 힙합의 역사를 공부할 정도로 오픈 마인드를 지닌 음악가다. 반면 진은 늙어버린 스스로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시 무대에 서는 걸 두려워한다. 결국 네 친구가 함께 무대에 서는 마지막 장면은 전혀 드라마틱하지 않다. 노래하기를 겁내던 진의 목소리가 기적적으로 되돌아온다거나,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씨씨의 증세가 갑작스럽게 호전되는 등의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이 드는 건 원래 다 그런 것이고,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살아가면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뿐이다. 큰 굴곡 없이 흘러가는 전개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맞닿아있다. 젊었든 늙었든 삶이란 극적이지 않고, 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 인상적인 건 이 영화가 피력하는 예술관이다. 레지는 어린 학생들에게 오페라에 대해 강의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옛날 오페라라는 건 여러분처럼 편한 옷 입고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었다. 그러나 부자들이 독점하게 되면서 영혼 없는 껍데기가 되었다.” 그러자 오로지 힙합만을 듣는다는 흑인 학생이 “랩은 말을 하고 오페라는 노래한다는 차이일 뿐 다 똑같다”는 랩으로 화답한다. 그리고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갈라 콘서트는 대규모 음악회가 아닌 소박한 하우스 콘서트의 분위기에 가깝다. 예술이란 결국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이고, 그래야 의미가 있다는 울림을 주는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2013년 3월 28일 목요일 | 글_최승우 월간 PAPER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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