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배창호. 인간과 인생 그리고 현실을 그리는 연출가인 그가 돌아왔다. 올가을 또 한번 한국영화의 힘을 보여줄 대작영화 '흑수선'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관객들의 심판을 받을 일만 남았습니다." 가을 햇살에 비치는 그의 얼굴은 소년같다. 가을 햇살이 따가운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그를 만났다. 참 여유있고 뭔가 만족한 듯한 표정이다. 소규모 영화를 제작 혹은 감독하다 대작영화를 만든 후 관객들과 만날날을 기다리는 그의 모습에서 자신감이 배어 나왔다. 배감독의 16번째 감독작인 '흑수선'은 이미 9일 개막하는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면서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순제작비 40억원이 들어간 대작으로, 이념이 사라진 2001년의 서울과 이념과 이데올로기로 혼동스러웠던 1952년 거제 포로수용소가 배경이다. 연쇄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 오형사를 통해 극중 인물들의 슬프면서 스펙터클한 운명과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최근 '러브 스토리' '정'등 소규모 영화를 만들어 오던 배감독이, 막대한 제작비에 한국전쟁과 현재를 오가는 시간 구도 속에서 풀어내는 액션과 미스터리 영화라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그는 연출동기에 대해 "내 영화인생에서 재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하고 싶었다. 내부적으로도 힘을 얻고 대중적으로도 나를 재인식시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흑수선'은 참으로 다양한 영화작업을 해온 배감독의 영화인생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울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배감독은 어려서 부터 영화를 하려고 했다. 대학에선 경영학을 공부했지만, 감독 이장호, 작가 최인호씨를 따라다니며 70년대 중반부터 영화동네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대학졸업후 현대종합상사 1기 사원으로 입사, 직장인이 되었고 아프리카 케냐 지사장도 지냈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꿈만은 포기 할수 없어 78년 이장호감독의 연출영화 '바람불어 좋은날'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후 그는 사실적인 터치가 돋보인 '꼬방동네 사람들', 싸늘한 인간의 내면을볻그린 '깊고 푸른 밤', 새영화문법을 선보인 '황진이', 젊은 영혼들의 이야기를 담은 '고래사냥', 그리고 저예산 영화 '정'까지 폭넓은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데뷔 5년동안 급상승했고, 일찍겪은 성공은 때론 헛점이 되기도 했다. 감독뿐만 아니라 제작-배급까지 손대, 흙탕물에 빠지는 등 부침도 겼었다. 산전수전 다 맛본 셈이다. 그런 그가, 인생의 깊이가 느껴지는 나이에 '흑수선'으로 새로운 작업을 위한 터닝 포인트를 마련했다. 배감독은 영화는 사랑과 욕망 그 속의 인물들을 영상으로 옮기는 예술작업이라고 말했다. 젊은 시절 '쉐인' 등 서부 영화를 보면서 용서와 화해 등 인생을 많이 배웠다고 했다. 그런 생각으로 인간과 세계를 보아온 그의 눈은 세월에 따라 성숙될 지언정, 근본적인 것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외면상의 변화에 비해 자신이 만드는 영화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배감독. 자신감으로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는 그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봤다. |
'고래사냥' 등 잘나가던 인기감독 제작-배급 손뻗쳐 실패의 길 경험.
'인간 본질 탐구' 일편단심 영화관 16번째 작품.. 연륜무기로 대작 U턴.
>> 소규모작품에서 대작으로 다시 대중 앞에 돌아왔는데?
<< 소규모작품도 창조적 작업이었어요. 저예산 영화 '정' '러브 스토리'등 즐겁게는 작업했지만, 금전적인 손해와 대중과의 괴리 등 그 대가도 만만치 않게 치렀어요. 대중적인 영화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고, 영화작업에 자체에 대한 설계도 다시 했지요. 작품성과 흥행성이 만나는 지점이 되는 영화가 '흑수선'입니다.
>> '흑수선'의 연출변은?
<< 데뷔작인 '꼬방동네 사람들'을 만들던 초심으로 돌아가 그 정열로 찍었어요. 두편을 찍는 기분이었어요. 육체적으로 힘들었구요. 요즘 우리 관객들과 제작사 사람들의 눈이 날카로워 졌어요. 예전엔 좀 듬성듬성 찍은 경우도 있는데, 이번엔 최선을 다했어요. (웃음) 이젠 관객들의 심판만 남았어요. 수치는 모르겠지만 흥행도 낙관적입니다. 재미, 스타, 마케팅 그리고 작품성까지 잘 갖춰졌다고 생각합니다.
>>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한 것은?
<< 형식은 흡인력 있는 대중영화장르인 미스터리 형사물입니다. 복선과 반전으로 드라마의 재미와 깊이를 많이 생각했어요. 6.25의 소용돌이 속에서 원치않은 상황으로 인해 운명이 바뀐 인간과 비극적인 현실을 담았어요. 미스터리 형식을 빌려 한국 전쟁과 그 전쟁 속의 비극적인 인간들의 운명과 사랑이야기입니다.
>> 안성기씨와는 13번째 작업인데?
<< 열세번째 연속으로 함께 작업했어요. '천국의 계단'이후 10년만이구요. 기네스북에 오를 기록인지도 모르겟어요. 안성기씨는 무채색 배우입니다. 개성이 없는 듯하지만 개성이 강하지요. 출연작품들의 성격이 다 달랐지만 어느 작품이든 걱정안하고 작업했어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영화작업이었고 편안했어요.이번 영화에선 감정의 깊이, 드라마의 구축에 힘을 많이 실었어요. 또 다른 연기자인 이미연씨는 그녀의 다양한 모습이 잘 담긴 내면연기가 돋보이는 영화가 될겁니다. 또 이정재씨는 역동적인 모습으로 관객들과 만나게 될 겁니다.
>> 배창호 감독의 영화는 다양한데?
<< 항상 모자란 부문을 다음작품에서 시도하곤 했지요. 디테일이 부족하면 '기쁜 우리 젊은날', 새로운 문법이 필요하면 '황진이' 그런 식었어요. 내용적으로는 인간의 본질적인 것은 무엇인가하는 화두를 지금껏 지니고 있어요. 사랑과 욕망의 문제이겠지요. 욕망과 욕망의 충돌은 파멸이란 결과를 낳습니다. 영화관이자 인생관이기도 합니다.
>> 감독의 역할에 대해선?
<< 고통스러운 직업입니다. '타자'를 위한 '나'를 추구, 보편타당한 우주성을 형상화한다는 명제가 놓여있습니다. 또 현실을 가장 가깝게 주물러서 화면을 만들어야하는 직업적인 고통도 만만치 않아요. 현실을 가장 가깝게 재생할수 있는 게 영화여서 그 책임감도 큽니다.
>> 최근 신인감독들이 등용의 기회가 많아졌으나, 일회용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 최근엔 기획, 스타, 자본으로 규격화된 영화들이 다수 생산됩니다. 누구나 비슷하게 만들 수 있는 그런 요건은 된 겁니다. 신인감독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좋게 생각하지만, 얼마나 창의력을 발휘해서 영화를 만드는가 하는 점에서 머뭇거리게 됩니다. 조감독시절을 거치면서 고생도 좀 하고 사물이나 세계를 보는 자기 만의 눈같은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는?
<<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웃음) 싫어하는 것 빼고는 다 좋아해요. 인간의 영혼을 파괴할 정도로 쾌락적 요소가 강한 영화, 극심한 포르노, 잔혹영화는 싫어합니다. 자기도 모르면서 무슨 세계가 있는 양하는 영화도 그렇습니다. 인간냄새, 인생의 이야기가 묻어나는 영화가 좋아요. 그게 있어야 영화를 만들고 보는 즐거움도 느낍니다.
>> 제작, 배급도 해보았는데?
<< '정'의 경우 만들고, 개봉관 찾고, 극장에 거는데 3년 걸렸어요. 제작 배급은 더 잘 할수 있는 능력 생기면 다시 할수 있겠지요. 생각은 열어 놓았지만, 당분간은 그런 계획은 없고 연출에만 전념할 생각입니다.
>> 한국 영화를 보는 시각은?
<< 관객들도 많고 시장의 잠재력도 커지고 전반적으로 잘되고 있어요. 고무적이죠. 특수효과, 컴퓨터 그래픽 등 기술적인면도 많이 발전했어요. 능력있는 연기자들도 많이 생겼구요. 나라전체가 영화국가가 될 정도로 조짐이 좋아요. 미국의 경우 20만달러에서 2억달러짜리 영화가 만들어져요. 수백개 극장에서 상영되는 작품도 있지만 2개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들도 많아요. 다양성이지요. 우리 영화도 내용, 형식, 배급까지 다양화되었으면 해요.
>> 일상은 어떻게 꾸려지나?
<< 무미건조해요. 책읽고, 걷는 것에 가까운 등산, 일곱살짜리 딸아이와 놀고, 그렇게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것만 해도 바빠요. 술과 담배는 4년 전에 끊었어요. 그런데 이번 '흑수선'을 하면서 강우석 감독의 유혹(?)으로 두번 정도 외도를 했어요. 술을 다시 시작한 게 아니라 잠시 술에 관한 외도일 뿐이었어요.(웃음)
>> 앞으로의 계획은?
<< 문학도 성격에 따라 시, 소설, 일기 등 장르가 많지요. 그것처럼 다양한 영화를 골고루 해보고 싶어요. 일기같은 영화는 만들어 보았으나 시같은 영화를 아직 못해봤어요. 하고 싶은영화를 만드는 것이지요.
배창호 감독은? 1953년 대구에서 출생, 서울에서 성장. 서울고,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현대상사 아프리카 케냐주재 근무. 82년 '꼬방동네 사람들'로 감독데뷔. '적도의 꽃' '고래사냥' '깊고 푸른밤' '꿈' '천국의 계단' '젊은 남자' '정' 등 감독. 대종상 신인감독상, 아태영화제 감독상, 서울시문화상, 대종상 감독상, 우디네이 아시아영화제 최우수관객상 등 수상. 3년만에 연출을 맡아 16일 전국개봉하는 '흑수선'(태원엔터테인먼트 제작)으로 감독복귀. |
<자료제공 : 스포츠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