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뉴 저먼 시네마(New German Cinema)를 이끌었던 빔 벤더스는 <피나>를 통해 3D 영상과 다큐멘터리의 접합을 시도한 바 있다. 세계적인 무용가 피나 바우쉬의 삶을 다룬 이 작품에서 3D 영상은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매력적으로 그려냈다. 영화는 2012년 국내 개봉 당시 평단의 지지를 받으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또 한 명의 뉴 저먼 시네마 기수인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도 <잊혀진 꿈의 동굴>를 통해 3D 영상 구현을 시도한다. 베르너 헤어조크가 빔 벤더스와 다른 점이 있다면 카메라의 대상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잊혀진 꿈의 동굴>의 배경지는 프랑스 남부 아르데스 협곡에 위치한 쇼베 동굴이다. 1994년 이곳을 발견한 탐험 대장의 이름을 딴 쇼베 동굴은 동굴곰, 메머드 등 3만 2천 년 전에 살았던 동물을 그린 벽화 300여점이 남겨져 있다. 프랑스 정부는 동굴 벽화 훼손 방지를 위해 동굴 외부인의 침입을 금했다. 지속적인 감독의 요청에 프랑스 정부는 출입을 허가했다. 하지만 하루 4시간씩 총 6일 동안의 짧은 촬영 기간, 두 발 너비의 금속발판상에서만 촬영이 가능한 이동 범위, 최소한의 장비 반입만 허용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이 붙었다.

촬영에 어려움이 많았음에도 <잊혀진 꿈의 동굴>은 황홀한 영상미를 전한다. 카메라에 담긴 고대 동물들의 모습은 살아 움직이는 착각에 사로잡힐 만큼 생생하다. 울음소리가 들릴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실감나는 3D 영상은 입체감을 도드라지게 표현하려는 기술적 노력이 아닌 동굴 벽화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감독의 연출력에 기인한다. 카메라는 입체적으로 생긴 암벽 위에 그려진 그림을 스캔하듯 담는다. 암벽 자체의 굴곡은 자연스러운 입체감을 선보이고, 그림 또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감독의 내레이션이 멈춘 뒤 웅장한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벽화 퍼레이드는 경이로움까지 전한다.

영화의 3D 영상은 눈의 즐거움만 전하는 건 아니다. 감독은 3D를 도입함으로서 과거와 현재의 보이지 않는 시·공간적 벽을 허문다. 영화는 동굴 안을 탐사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어 고대인들이 동굴에서 어떤 생활을 했으며, 벽화는 왜 그리게 됐는지 상상하게 만든다. 동굴 내부를 조사한 데이터를 통해 동굴 형태를 유추하는 고고학자나 수많은 벽화를 통해 고대인들의 성향을 파악하는 미술학자처럼, 감독은 3D 영상을 통해 고대인들의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3D 영상이 이끈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매력적이다. 3D를 도입해 새로운 영상미를 구축한 노장 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

2013년 1월 9일 수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 3D 도전한 노장 감독에게 박수를 -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동굴 벽화 - 직접 동굴 탐험을 떠난 것 같은 착각 - 다큐멘터리는 지루해서 안 본다는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