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즘으로의 귀환. "게임의 법칙"의 장현수 감독이 돌아왔다. "게임의 법칙"은 한국식 액션의 한 획을 그었던 멋진 영화였다. 개인적으로 존 보이트와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했던 "미드나잇 카우보이"와 장 폴 벨몽도가 열연한 "네 멋대로 해라"등의 영화를 너무나 사랑했던지라, 이 영화들을 몽땅 두들겨 한국식으로 풀어낸 듯한 "게임의 법칙"에 손바닥이 화끈거리도록 갈채를 보내던 학창시절의 기억이 생생하다.
장현수 감독의 데뷔작 "걸어서 하늘까지"는 어떤가. 당시 같은 원작에 제목까지 똑같은 TV연속극이 히트하면서 흥행에 실패하는 비운을 겪어야 했지만, 뒤늦게 비디오로 찾아본 영화 "걸어서 하늘까지"는 참으로 비범한, 놀라운 데뷔작이었다. 아직까지도 필자는, 배우(탤런트가 아닌) "정보석"하면 이 영화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게임의 법칙" 이후, 장현수 감독이 내놓은 "본투킬"과 "남자의 향기"등은 (흥행의 여부와 상관없이) "퇴보란 바로 이런 것이다"라고 말해주는 듯 하였다. "본투킬"은 장르에 과도하게 집착하다가 다분히 비현실적(판타지적)이 되어버렸고, "남자의 향기"는 원작 소설 자체가 전형적인 군인과 여고생의 판타지였다.(군대 갔다온 분이라면 아시리. 필자의 군대생활 당시에도 부대에서 이 소설은 안 읽은 사병이 없을 정도였다) 한마디로 감독은 리얼리즘을 버리고,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었던 격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가 '라이방'으로 돌아왔다. 리얼리즘이라는 양념을 다시 집어든 것이다.
영화의 전반부는 평범한 세 명의 30대 서민들의 남루하지만 아기자기한 일상을 보여주고, 후반부는 소위 '한탕'과 얽힌 해프닝으로 채워진다. 소득 없는 해프닝 끝에 한바탕 허탈한 웃음을 남기고, 한국을 떠나는 주인공들이 남긴 메시지는 대강 이런 것이다. "우리는 쉴 그늘을 찾아 부유해왔고, 그늘은 늘 움직였기에 우리도 따라서 움직여야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움직이지 않는 그늘을 찾았다. 당신은 움직이지 않는 그늘이 어디 있냐고 묻겠지만, 있다. 그것도 당신과 가까운, 당신 곁에." 우리 모두는 궁금해진다. 과연 그럴까?
이것은 분명 청춘영화다. 또래의 친구들로 이루어진 주인공들은 뭐 하나 딱히 이루어 놓은 것 없이 방황하고, 비루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 가진 거라곤 몸뚱이 하나 뿐이라해도 과언이 아닌 이들은, 사회의 높은 벽 앞에서 허덕이면서도 다시 고개를 들어 희망을 찾고, 서로의 존재에서 위안을 얻는다. 이것은 전형적인 청춘영화의 이야기이다.
원더풀 브라보 아빠의 청춘.
어쩌면 인생이란, 지금의 현실에서 끝없이 도피하고, 달음질을 치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지금 여기"에 만족하고, 돌아보고 웃으며 한없이 즐기는 것은 성인의 경지에 오른 현자나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에게나 가능한 일이 아닐까.
"완다뿔 완다뿔 아빠의 청춘..." 영화를 보고 필자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술자리에서 불러봤을 "아빠의 청춘"이란 노래가 자꾸 떠올랐다. 영화는 주인공들이 베트남의 야자수 그늘아래 행복하게 웃으며 끝을 맺지만, 베트남의 그늘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움직이지 않는 그늘로 결론 짖지만, 그 유대가 영원하리란 보장 역시 어디에도 없다. 다만 삶의 난관이 계속되는 한, 그들의 청춘만은 지속될 것이다. 우리의 청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