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적으로 태준식 감독은 예상을 비껴갔다. 그는 ‘영웅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답습하는 쉽고 보편적인 길을 마다했다. 물론 그런 부분에 언급이 아예 전무한 것은 아니지만, 미미하다고 할 정도로 간결하게 팩트를 다뤘을 뿐이다. 그 대신 <어머니>의 카메라는 故 이소선 여사의 옆에서 마치 동행하듯 조용히 따라가며, 2009년부터 지난해 9월 영면하기까지 그녀의 2년간의 생을 세세하게 잡아냈다. 태준식 감독이 공개한 제작노트에 따르면 촬영횟수는 날짜 수로만 100일에 가까웠고, 심심해서 카메라 없이 그냥 놀러간 시간도 적지 않았을 만큼 촬영팀은 ‘어머니’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고 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예상외로 세련되게 연출된 작품이라는 것이다. 소재가 소재인 만큼 뻣뻣하고 고지식한 다큐멘터리라는 선입견을 갖기 쉬우나, 영화로서의 미학적 완성도 역시 상당히 준수한 편이다.
거창한 수식어나 대의를 주장하는 캐치프레이즈가 아닌, ‘어머니’라는 단출하고 친숙한 말은 이 영화가 담고 있는 것을 한마디로 함축해서 보여주는 제목이다. 고스톱을 즐겨 치고, 누굴 만나는 날에는 소녀처럼 곱게 꾸미고, 신경통이 도진 발목을 주무르는 어머니. 영화 속 故 이소선 여사의 모습은 소탈하고 우스갯소리 잘 하는 평범한 보통의 어머니다. 이는 박광수 감독의 1995년작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영화와 다큐멘터리라는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과 <어머니>는 대칭점에 놓여있다. 전자가 한사람의 상징적인 삶을 통해 한국의 현대사를 반추하는 영화라면, 후자는 반대로 그 상징성을 걷어내고 ‘영웅’을 ‘인간’으로 되돌려놓는다. 태준식 감독은 “어머니의 삶은 골목의 삶이었다”고 말한다. 결국 자신을 낮추고, 자신의 주위부터 둘러보고 보듬어온 ‘동행’의 삶이었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의 모습은 어떤 이념보다도 감동적이다.
이 세상에서 사람을 진정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어떤 정치적인 메시지나 딱딱한 이데올로기의 강령이 아니다. 그보다는 훨씬 사적이고 개인적인 공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나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가 겹쳐 보이는 故 이소선 여사의 모습은, 그녀가 아들의 분신 이후 평생 실천하고 지켜왔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저절로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어머니>는 그런 울림을 지닌 영화다.
2012년 4월 4일 수요일 | 글_최승우 월간 PAPER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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