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코믹스는 DC코믹스의 ‘슈퍼맨’을 보면서 자기네도 우주에서 날아온 망토 두른 사나이가 한명쯤 필요하다 여겼을지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축복받은 유전자 ‘토르’가 탄생했을까. 마블의 신참 캐릭터 ‘토르’는 어두운 과거로 인해 끊임없이 정체성 고민에 빠져야 했던 ‘엑스맨’, ‘스파이더 맨’, ‘헐크’와는 분명 다른 히어로다. (자기 잘난 맛에 산다는 점에서 ‘아이언맨’과 비슷하지만 ‘토르’입장에서는 ‘아이언맨’도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 태어나자마자 ‘신(神)이라 불리운 사나이’를 스크린 위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구현해 낼 것인가. 마블엔터테인먼트(마블코믹스가 차린 제작사)는 그 해답을 셰익스피어 희곡 번안에 발군의 기량을 과시한 케네스 브래너에게서 찾았다. 언뜻 보면 의외인 ‘케네스 브래너와 슈퍼히어로의 만남’은 ‘토르’가 북유럽 신화에 기반을 둔 인물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단순 오락물로 평가받던 슈퍼히어로 영화를 지적인 볼거리로 진화시킨 브라이언 싱어(<엑스맨>), 샘 레이미(<스파이더맨>), 크리스토퍼 놀란(<다크나이트>)처럼, 케네스 브래너도 그만의 독창적인 슈퍼히어로 무비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여기에서 잠시 마블엔터테인먼트의 전작인 <아이언맨>과 <인크레더블 헐크>를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두 영화를 통해 마블엔터테인먼트는 자신들의 전략이 심오한 의미를 담은 희대의 걸작을 만들기보다, 대중지향적인 오락영화 만들기임을 드러낸 바 있다. 작가주의 영화와 유쾌한 오락 영화 사이. 그 사이에서 케네스 브래너가 선택한 건, 후자에 가깝다.
<토르 : 천둥의 신>에서 케네스 브래너가 자신의 창의성을 충분히 발휘했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정의로운 자만이 움직일 수 있는 망치 ‘묠니르’는 <아더왕>의 엑스칼리버를 연상시키고, 신과 지구인의 사랑은 <슈퍼맨>, 망나니가 개과천선한다는 내용은 <아이언맨>과 연결된다. 그리스 희곡을 닮은 서사구조가 흥미롭기 하지만, 그것 역시 케네스 브래너의 소유격이라 할 수는 없다. 히어로무비에게 기대되는 액션 강도도 그다지 높지 않다. 디스트로이어의 갑옷을 입은 로키가 지구 마을을 박살내는 장면에서는 <후뢰시맨>등의 특촬물이 떠오를 정도다. 3D효과 역시 큰 기대를 접는 게 낫다. 3D 컨버팅의 ‘잘못된 예’를 보여준다.
하지만 <토르 : 천둥의 신>은 마블코믹스 히어로들이 총출동하는 <어벤저스>의 다리 역할은 충실히 이행해 낸다. 영화에는 <어벤저스>에 대한 힌트가 곳곳에 흩뿌려져 있다. <아이언맨>과 <인크레더블 헐크> 관련 내용을 극중 인물들의 대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영화는, ‘쉴드’의 닉 퓨리 국장과 콜슨 요원을 찾는 재미도 선사하다. ‘호크아이’로 캐스팅 된 제레미 레너의 깜짝 등장은 “심봤다”에 비견될 만하다. 언제나 그랬듯 <어벤저스> 관련 쿠키 영상도 엔딩 크레딧 이후에 등장하니, 자리를 사수할 것. <아이언맨2>가 그랬듯, <토르 : 천둥의 신> 역시 아는 자가 더 많이 즐길 수 있는 오락 영화다.
2011년 4월 27일 수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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