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영화 <오슬로의 이상한 밤>을 보면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실제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이미 언급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 노르웨이의 이웃 동네인 핀란드 출신 영화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주인공 호텐은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를 꼭 닮았다. 껑충하고 구부정한 몸짓, 반백의 콧수염을 기른, 어딘가 허점이 많을 것 같은 말없는 북유럽 출신의 남자. 캐릭터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도 아키 카우리스마키와 흡사하다, 조용하고 아름답지만 쓸쓸하다.
이것은 어쩌면 추운 나라 사람들이 공유하는 공통적인 정서인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개봉했던 아이슬란드 영화 <노이 알비노이>에까지 이르면, 인간은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 새삼 실감난다. 열대지방 사람들에게 눈과 겨울은 다른 세상 이야기이고,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의 사람들에게는 낭만적인 비일상이다. 그러나 사방천지 눈과 얼음에 둘러싸여 사는 사람들에게는 지긋지긋한 현실이다. 영화의 앞부분으로 호텐의 삶에 대해 몇 가지 유추해볼 수 있는데, 그는 이런 북유럽의 날씨처럼 단조롭고 재미없게 살아온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그의 인생은 탈선을 모르고 앞으로만 곧게 달리는 기차와 같았을 것이다. 소심하고 용기가 없는 그는 트러블이 생기면 일단 자리를 피하고 보는 사람이다. 그 나이가 되도록 독신이고, 변변한 친구도 없다. 자신을 바라보는 여인의 따뜻한 마음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은퇴 파티를 시작으로 호텐은 가는 곳마다 해괴하고 웃지 못할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단골식당에 갔더니 주방장이 경찰에 잡혀가고, 불 꺼진 수영장에서 혼자 유유히 수영을 즐기다가 갑자기 알몸의 커플이 들이닥쳐 사랑을 나누는 바람에 황급히 도망간다. 그 와중에도 그의 표정은 거의 변화가 없어서 숙연하게 보이기까지 하는데, 사실 이 점이 <오슬로의 이상한 밤>의 개그 코드다. 이 사람이 지금 진지한 건지 웃자고 하는 건지 헷갈려서 더 웃기는 형국이다. 이런 웃음은 아름답지만 적적한 노르웨이의 밤거리 풍경과 맞물려, 어딘가 현실에서 약간 어긋나 있는 듯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호텐이 겪는 이상한 밤의 종착지는 어떤 괴짜 발명가와의 우연한 만남이다. 그는 호텐에게 자기 집에 있는 운석을 보여주며 말한다. “이 운석은 우주를 거쳐 이 집에 도착한 게 아니다. 운석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이 말은 영화 전체가 품고 있는 주제를 함축한다. 인생은 낯설고 기묘한 우연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새로운 시작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호텐은 소박하지만 대단한 도전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오슬로의 이상한 밤>은 이런 단순하고 보편적인 테마를 무겁지 않은 깔끔한 소품집처럼 보여주는 영화다.
2011년 2월 7일 월요일 | 글_최승우 월간 PAPER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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