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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영화, 그리고 시네마테크
2011년 1월 10일 월요일 | 백건영 영화평론가 이메일



1996년 미국은 자국 내 모든 기업에게 쿠바와의 교역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른바 ‘쿠바 민주화법’이다. 몰락한 사회주의국가에게도 원조를 조건으로 쿠바와의 교역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위의 말은 법 통과 직후 발의자인 헬무트 버튼 상원의원이 호기에 차서 한 발언이다. 그 결과는? 이미 여러분이 잘 알고 있을 터이다. 그렇다면 쿠바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신가.

사실 많은 이들에게 쿠바는 카리브 해의 열정적인 사람들이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유의 음악과 질 좋은 시거를 즐기면서 체 게바라의 그림자를 품고 살아가는 꽤나 낭만적인 나라로 인식되어왔다. 송일곤 감독의 <시간의 춤>과 곧 개봉하는 정호현 감독의 <쿠바의 연인>이 그려내는 쿠바인들의 삶의 방식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쿠바는 미국의 코앞에서 자존심을 세우며 살아가는 독특한 사회주의 국가다. 미국이 안간힘을 써도 도무지 난공불락이다. 심지어 쿠바 본토에 관타나모 기지를 포함해 공항과 해군기지까지 소유하고 있는 데도 말이다. 놀라운 것은 이 나라의 복지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이다. 특히 의료체계는 완벽한 무료에 무상으로 이루어져있다. 1,000만 조금 넘는 인구에 종합병원이 280개가 있고 매년 28개 의과대학에서 4,000명의 의사가 배출된다. 주민 168명당 1명꼴이다. 한국은 500명에 1명이니 비교가 되질 않는다.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근절된 세계 최초의 국가이고 전 국민을 상대로 에이즈 바이러스 검사를 실시한 최초의 나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초강대국의 폭압적 무역금지조치로 인해 위기가 찾아왔다. 물품수입이 금지되자 식료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국민들은 타의에 의해 다이어트를 하게 된다. 질병이 늘어났고 국민건강과 보건의료체계에 위험신호가 감지되었다. 다른 나라였다면 미국에게 유화적 제스처를 취하면서 교역재개를 애걸했겠지만, 쿠바정부는 건강의료비를 증액하는 대신 국방예산을 반 이하로 삭감시켰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의약품이 없으면 별무소용이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전통의학, 대체의학이다. 서양의학에 익숙했던 의사들이 전통의학을 받아들이긴 쉽지 않았지만, 각계의 노력으로 적절하게 사용하면서 쿠바는 보건의료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새해 벽두부터 웬 쿠바 의료체계 이야기냐고 할는지도 모르겠다. 타국 국민의 기본생존권을 위협하는 금수조치를 내리면서도 ‘자유와 민주’를 앞세우는 대단한 나라 미국의 비열한 행위를 보면서 ‘공정’과 ‘다양성’을 내세우며 시네마테크 지원을 중단하고 독립영화의 근간을 침탈한 한국보수문화집단의 야만적 작태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은 헬무트 버튼처럼 ‘많은 영화인들이 한국독립영화협회나 서울아트시네마와 거리를 두고 투항해올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혔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돈줄을 쥐고 흥정하면서 제 편으로 만들거나 숨통을 끊어버리겠노라 호언장담했던 어리석은 자들은, 자충수에 빠져 허우적대는 중이다. 영진위위원장의 연이은 중도하차와 독립영화전용관의 영진위직영이라는 무리수가 이를 반증하고 있다. 모름지기 도전에는 응전이 따른 법. 의약품수급에 문제가 생기자 전통의학이 등장한 쿠바의 경우처럼, 우리도 고난의 계절을 통과하면서 다양한 방식의 해법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중이다.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영화는 만들어지고 있고 정부지원예산의 전액 삭감에도 영화제를 잘 치러냈으며, 임대료 중단에도 각계의 후원 속에 시네마테크는 오늘도 뤼미에르의 빛을 쏘고 있다.

오는 18일부터 시네필의 축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시작된다. 언제나 그랬듯이 각각의 영화들마다 무려 41일 간 폭포수 같은 은총을 쏟아낼 것인즉, 보고 즐기고 동참하면 될 일이다. 신묘년 한 해의 시작은 이렇게 시네마테크와 함께 간다. 눈부신 영화들의 향연에 빠져 신묘한 체험과 영험한 기운을 듬뿍 받아 올 한 해도 잘 버텨낼 것을 다짐하자. 당신도 그리고 나도.

글_백건영 영화평론가(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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