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비>는 지난 해 8월 한달 간 밴드 YB의 미국 록 투어를 담은 음악 다큐멘터리다. 5년 전 <온 더 로드, 투>라는 이름으로 유럽 투어를 감행했던 그들이라면 한층 노련해지고 여유로워졌겠다 싶지만, 그들은 더 당황하고 다양한 위기에 봉착한다. 미국 워프트 투어에 참석하는 한국 최초의 밴드라는 흥분은 초라한 무대 규모와 인색한 관객 반응으로 움츠러든다. 국내에서는 한 번에 만 명을 운집시킬 수 있는 국민 밴드지만, 태평양을 횡단하는 순간 그들은 먼 나라에서 건너온 무명밴드 일 뿐이다. 첫 공연의 관객은 8명 남짓. 메인 스테이지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무대에서 그들은 잔뜩 긴장한 채 15년 전 첫 무대의 긴장과 불안, 설렘을 다시 체험한다.
미국 7개 도시를 횡단하는 YB의 투어와 함께 YB를 만나러 가는 이민 2세 소녀 써니의 로드 트립, 두 가지 플롯이 교차한다. 이들의 여행 사이로 끼어드는 후일담 인터뷰는 일반적인 음악 다큐멘터리의 포맷을 그대로 따른다. 이는 <온 더 로드, 투>와 엄연히 달라야 한다는 의도가 짙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온 더 로드, 투>가 여유로운 음악의 시간을 영위한다면, <나는 나비>는 MTV적인 경쾌한 편집과 밝은 터치, 그리고 드라마틱한 소재와 사건을 나름 공들여 설치해둔다. 특히 한인 소녀와 밴드의 여행이라는 두 가지 플롯은 후반부 작은 드라마를 위해 마련된 장치인 셈이다. 하지만 감동적인 해후라는 드라마만 설정하다 보니 써니 개인의 드라마와 캐릭터를 구현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다. 러닝타임 내내 길 위를 달려온 그들의 만남은 싱겁게 끝난다. 밴드의 내적인 성숙과 에너지에 이야기가 기울면서 애초에 심어둔 써니의 분량은 대폭 축소된다. 이로써 한인 소녀 써니를 통해 휴먼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취하지도, 공연에 심혈을 기울여 음악 다큐멘터리로서 방향을 모색하지도 못한다.
흔히 밴드영화에서 바라는 성취와 감동이 <온 더 로드, 투>에서는 없었다면, <나는 나비>에는 있다. 하지만 국민밴드라는 자존심이 무색하게도 차가운 반응이 난무하는 몇 번의 공연을 통해 나비로 날아오른다는 손쉬운 내러티브가 만들어내는 작위적인 감동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나비>는 밴드가 주인공이지만 음악 영화보다는 로드 무비라 말해야겠다. 그들의 음악은 뮤직비디오 같이 현란하고 감각적인 영상으로 짜투리처럼 삽입된다. 낯선 공기 속을 부유하지만 음악과 침묵마저 온전히 담아내던 <온 더 로드, 투>와는 확연히 다른 화법이다. 전작과는 분명히 괘를 달리 해야 한다는 기획 의도가 강하게 드러난다. 마지막 무대의 록 스피릿은 비록 성취라는 이름으로 덧칠하지만, 멤버들에게서 일말의 진정성은 느껴진다는 데서 작은 위안을 받아야 할까. 굳이 알에서 깨어나 나비로 날아 올라야 한다는 강박보다는 길목에 마련된 무대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그들의 내적 고백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이 ‘Why be’에 어울리지 않았을까.
2010년 12월 2일 목요일 | 글_프리랜서 양현주(무비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