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트마 간디의 진보적인 사상이 퍼지고 있던 1938년 인도의 바라나시. 이제 막 8살이 된 쭈이야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과부들이 세상과 격리된 채 평생 속죄하며 숨어사는 ‘아쉬람’에 버려진다. 병든 늙은이와 결혼하자마자 남편이 죽어버려 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죽은 듯 고요하던 아쉬람은 천진난만한 쭈이야(사랄라)로 인해 술렁이기 시작하고, 쭈이야는 그곳에서 유일하게 긴 머리칼을 가진 18살의 아름다운 과부 깔랴니(리사 레이)와 친구가 된다. 어느 날 깔랴니는 젊은 법학도 청년 나라얀(존 에이브러햄)과 우연히 마주치고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먼저 배경지식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인도의 ‘사티(Sati) 제도’에 대해서다. 과거 인도의 과부들은 ‘신과 결혼한 여인’이라고 불렸다. 남편이 죽게 되면 부인은 남편과 함께 생매장되거나 화장을 당했고, 그러면 그 부인은 신으로 호칭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쥘 베른의 소설 <80일간의 세계일주>에 나오는 아우다 부인이 바로 사티 제도의 희생자가 될 뻔했던 여인이다.) 이때 들어오는 경배 비용은 부인의 부모에게 모두 전달되어 생계에 보탬이 되는 게 관례다.
과부가 혼자 살 경우에는 머리를 모두 삭발하고 평생 채식만을 해야 한다. 게다가 인도에는 조혼(早婚)이 전통적으로 만연되어있다. 쭈이야처럼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될 경우 거지처럼 비참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도 아니면 가족들의 동의하에 시동생과 결혼할 수 있다. 몇 년 전에는 외삼촌과 결혼하기를 거부하는 딸을 아버지가 죽도록 매질하는 장면이 TV를 통해 방영되어 전국을 충격에 몰아넣기도 했다. 남인도 지역 곳곳에는 아직도 이런 힌두교의 경전에 따른 관습이 흔적처럼 남아있다.
이 영화는 과부가 된 소녀가 씩씩하게 세상을 헤쳐 나가는 모험담과는 거리가 멀다. 문자 그대로 지옥일 수밖에 없는 여인들의 처지를 직설적으로, 그리고 배우들의 균형 잡힌 연기를 통해 보여준다. 특히 영화 전체의 화자에 해당하는 귀족 출신의 과부 샤꾼딸라(심마 비스워스)의 연기는 단연 돋보인다. 영화는 당연하게도 픽션이고 드라마틱한 사건들의 연쇄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그 극적인 이야기는 현실을 수집한데서 나온 것이다. 아쉬람(힌두교의 사원)에 모여 사는 같은 처지의 과부들 사이에서도 서열이 나누어지고, 부조리가 행해진다.(어째서 깔랴니만이 머리를 기를 수 있는지는 영화를 보다 보면 곧 드러난다.) 나라얀과 결혼을 약속한 깔랴니가 아쉬람을 떠나면서 해피엔딩처럼 끝나려는 순간, 영화는 희망의 마지막 조각을 다시 구겨서 던져버린다.
인도계 캐나다인인 디파 메타 감독은 여성 동성애자를 소재로 다룬 <파이어>로 반향을 일으키는 등, 남성지배적인 인도 사회에서 고통 받는 여성들에게 과감하게 카메라를 들이대 왔다. <아쉬람>은 <파이어>와 <흙>에 이어지는 디타 메타 감독의 인도 3부작 중 마지막이다. 그중에서도 <아쉬람>의 여성들이 처해있는 상황은 논리적인 탈출구를 찾기가 불가능한 비극이다. 그러나 영화는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어도 그 무게를 가늠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각적인 영상과 음악으로 색칠했다. 사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단지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먼 땅의 현실인 것을 감안하면, 이 점이 옥의 티, 사족이 된 것 같아 조금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2010년 2월 22일 월요일 | 글_최승우 월간 PAPER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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