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보고 그냥 그런 발렌타인데이 영화라고 생각했다면, 조금 다르다. 물론 발렌타인데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로맨스 영화지만, 제목에 붙은 ‘헤이트’처럼 역설적인 감정 변화를 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렇다고 솔로부대의 ‘커플지옥 솔로천국’을 외치는 영화도 아니다. 주인공을 맡은 니아 발다로스는 이번 영화에서 감독, 각본까지 맡았다. <나의 그리스식 웨딩>으로 이미 각본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은 그녀이기에 이번 작품에서도 믿음이 간다.
쿨한 연애를 지향하는 골드미스 제네비브(니아 발다로스)는 어떠한 사람이라도 딱 5번의 데이트만 하고 헤어지는 나름의 연애규칙을 갖고 있다.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해 가장 뜨거울 때 깔끔하게 헤어진다는 것이다. 그의 연애론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쳐 많은 이들이 그녀에게 데이트 코치를 받는다. 어느 날, 옆집에 식당을 개업한 순진남 그레그(존 코벳)는 제네비브의 당당함에 매료돼 데이트 신청을 한다. 그렇게 시작된 둘의 연애. 하지만 2박 3일을 한 번의 데이트로 하느냐 두 번으로 하느냐를 놓고 서로 오해를 하게 된다. 4번이냐 5번이냐를 놓고 고민하던 두 사람은 자신들의 감정이 이미 데이트 규칙을 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진심을 말하기가 쉽지 않다.
<나의 그리스식 웨딩>으로 연기와 각본에서 모두 인정받은 니아 발다로스가 이번엔 연출까지 도전한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우여곡절을 겪으며 사랑에 골인한다는 흔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헤이트 발렌타인데이>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새로운 점층법을 보여준다. 서로 사랑하다가 오해가 생겨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용기를 내어 진심을 고백하고 해피엔딩을 맞는다는 기본 틀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5번의 데이트라는 룰을 통해 남다른 재미를 준다. 문제의 4번째 데이트. 2박 3일 간의 뜨거운 시간을 한 번이라고 보는 여자와 두 번이라고 보는 남자의 오해는 사랑은 규칙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마음이 결정한다는 당연한 진리를 다시금 되새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주인공 제네비브의 감정라인을 따라 간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주는 제네비브는 사랑 앞에 전전긍긍하지 않기에 항상 행복하다. 발렌타인데이에는 자신의 꽃가게에 오는 남자들에게 데이트코치를 해주고 모든 사람들에게 작은 선물을 하는 등 그녀의 눈에는 세상이 온통 밝고 긍정적으로만 보인다. 하지만 애매한 시간으로 인해 4번의 데이트에서 멈추자 애가 탄다. 왜 마지막 데이트를 신청하지 않을까? 왜 전화가 오지 않을까? 우연히 마주치면 어색해하지 말아야지 등 사랑의 감정을 감추지 못 하며 보통의 연인들처럼 사랑의 줄다리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감정은 그레그 역시 마찬가지다. 5번의 데이트를 모두 했다고 생각한 그는 사랑하는 제네비브에게 어떻게 다시 다가가야 할지를 고민한다. 5번의 데이트 이후 이별을 한다는 제네비브의 규칙을 알기 때문에 섣불리 다가설 수 없다. 하지만 진리는 의외로 간단한 곳에 있다. 원래 가장 어려운 문제는 정공법으로 푸는 거다. 주변에서 들려주는 당연한 진리를 새삼 깨달은 그레그는 자신의 뜻을 실천에 옮기기로 한다. 그리고 때마침 발렌타인데이가 아니던가. 타이밍도 좋고 의지도 굳건하다. 그레그는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꾸밈없이 보여준다.
<헤이트 발렌타인데이>는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사랑 이야기다. 대부분의 로맨스 영화가 그렇듯, 안 될 것 같으면서도 결국 잘 되는 결말을 택하고 있다. 이 영화 역시 이러한 결말을 취하고 있지만, 서로의 오해가 재미 요소를 만든다. 여기에 아기자기하면서도 화려한 배경이 시각적인 재미를 주고, 엉뚱한 캐릭터를 지닌 여러 친구들이 웃음을 유발한다. 로맨스 영화의 기본 공식은 지키면서도 식상하지 않은 에피소드의 나열에 <나의 그리스식 웨딩>에 이어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추는 두 배우 역시 사랑스럽다. 사랑은 결국 공식대로 가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헤이트 발렌타인데이>는 데이트용 무비로 안성맞춤이다.
2010년 2월 2일 화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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