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괴담>의 박기형 감독의 두번째 영화 <비밀>.
한국 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공포영화'라는 장르를 대중적으로 성공시킨 그가 이번에는 미스터리와 멜로를 적절히 섞은 '초감성 멜로'를 완성했다.
평범한 보험회사 직원인 구호(김승우)는 정체불명의 여중생 미조(윤미조)와 신비스런 교감을 체험한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며,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구호는 점점 미조의 신비감에 이끌리게 되고 미조 역시 그에게 사랑을 느낀다. 구호의 사랑을 확인한 미조에겐 물질을 끌어당기는 초능력이 생겨나기까지 하는 등 이상한 현상이 자꾸만 일어난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비밀이 하나씩 벗겨지면서 슬픈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고 만다.
항상 새로움에 도전하는 박기형 감독은 이번에도 무한한 상상력을 시도했다. 초능력이라는 소재를 등장시켜 자칫 평범하기 쉬운 멜로성에 신선함을 가져다 주었다. 그래서인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말로 일어날 수 있다는 정신적 교감(텔레파시)도 이 영화에선 다소 낯설게 다가온다. 박 감독 특유의 섬뜩함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도 그의 상상력은 동원된다. 극 중 비밀을 하나씩 벗겨내는 현남을 미조는 어떤 방법으로 죽일까? 물질을 끌어당기는 초능력을 이용, 그의 몸 안의 수분을 모두 빼내어 버린다. 이 장면은 <비밀>에서 심혈을 기울인 수중씬과 더불어 가장 눈길을 끈다.
박기형의 작품 속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이 등장한다. 데뷔작인 <여고괴담>에서는 학교마다 떠도는 전설을 모티브로 10대들의 짓눌린 정서와 학교폭력을 보여주었다. 이번 <비밀>에서도 초능력을 가진 소녀와 평범한 30대 남자 사이의 순수한 사랑과 대조되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타락한 도덕성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구호의 친구인 현남은 아내와 자녀를 둔 유부남이지만 직장 동료인 도경과 불륜적인 사랑을 나누다가 미조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 미조는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인간관계에 대해 철저하게 응징하며, 그들의 그릇된 가치관을 꼬집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다. 과연 현실에서도 미조와 같은 이가 존재할까? "난 괜찮아. 난 원래 없었으니까…"라는 그녀의 마지막 대사가 오래도록 슬프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