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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다를 입은 로봇이 나오는 전시회가 아니라 패션, 영화, 건축, 미술, 뉴미디어가 결합한 대규모 문화 프로젝트 ‘프라다 트랜스포머’가 두 번 째 프로그램 영화제를 개최한다. 이에 따라 경희궁 앞뜰에 설치된 건축물 ‘트랜스포머’가 영화관으로 2단계 변신을 했다. 패션 브랜드 프라다의 재단 ‘폰다지오네 프라다’와 세계적인 건축가 렘 쿨하스의 건축사무소 ‘OMA'가 주최하는 프라다 트랜스포머는 지난 4월 25일부터 5월 24일까지 첫 번째 프로그램 ‘웨이스트 다운-미우치아 프라다의 스커트’전을 개최한 바 있다.
‘프라다 트랜스포머: 시네마’는 26일 트랜스포머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두 번째 프로그램의 개막을 알렸다. 기자회견에는 프라다의 아시아 퍼시픽 CEO 세바스찬 쉴과 OMA의 건축가 알렉산더 레이처트, 프라다의 아트 디렉터 제르마노 첼란트 그리고 이번 영화제의 큐레이터를 담당한 <21그램>(2003) <바벨>(2006)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과 영화평론가 엘비스 미첼이 참석했다.
‘프라다 트랜스포머: 시네마’에서 상영될 영화는 총 14편이다. “1,000 여 편의 걸작을 외면하는 것 같아서 14편의 영화를 고르는 일이 너무 어려웠다”며 선별작업의 고충을 토로한 이냐리투 감독은 “이중 8편이 한국 내 미개봉작들이다. 다양한 시대와 국적의 영화들을 한국 관객에게 소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뜻 깊은 영화제가 될 것”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영화제의 테마는 ‘Flesh, Mind and Spirit’, 즉 ‘육체, 정신 그리고 영혼’이다. 이와 같은 테마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냐리투 감독은 “관객에게 강렬한 정서적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다. 각기 다른 메시지를 품은 작품들이지만 가족과 인간에 대한 감정으로 충만한 영화라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나에게 영감을 준 작품들이다”라고 설명했다.
먼저 ‘Flesh 육체’ 섹션에서는 ‘뉴요커’지가 “영화사상 가장 놀라운 데뷔작 중 하나”라고 칭송한 마르코 벨로키오 감독의 <호주머니 속의 손>(1965), 정복자의 광기를 다룬 베르너 헤르초크 감독의 <아귀레, 신의 분노>(1972), 아르메니아 영화 <사계>(1975), 찰스 버넷 감독의 <킬러 오브 쉽>(1977), 타비아니 형제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빠드레 빠드로네>(1977), 역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터키 영화 <욜>(1982) 그리고 김지운 감독의 변칙 웨스턴 무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이 상영된다.
‘Mind 정신’에서는 비교적 최근인 2007년 작부터 1960년대 프랑스 뉴웨이브 영화들을 만날 수 있다. 알랭 레네의 매혹적인 흑백영화 <지난해 마리앵바드에서>(1961), 쿠바의 정치적 격변기를 담은 <소이 쿠바>(1964), 아르헨티나의 중산층 가정의 위기를 그린 <늪>(2001)과 옴니버스 영화 <유 더 리빙>(2007)이 소개된다. ‘Spirit 정신’에서는 인간사의 비극을 다룬 덴마크 영화 <오데트>(1955), 탁월한 조명기법으로 절정의 영상미를 선보이는 <어머니와 아들>(1997), 신과 인간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고뇌하는 <침묵의 빛>(2007)이 잊기 힘든 정서적 체험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가진 질의응답시간에는 멀티미디어 시대의 영화관람 방법과 영화관의 역할에 대한 뜨거운 대화가 오가기도 했다. 이냐리투 감독은 텔레비전을 통해 자신의 영화를 본 장 뤽 고다르가 “이 영화는 내 영화가 아니다”라고 외쳤던 일화를 전하며 “같은 공간과 시간에서 타인과 에너지와 감성을 나눌 수 있는 극장에서의 관람이야말로 진정한 영화보기”라며 멀티미디어 시대에도 변할 수 없는 극장의 가치를 이야기했다. 덧붙여 그는 소수의 메이저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유통, 배급의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바르셀로나에서 아내와 <밀양>을 개봉 첫 주말에 보러갔는데 관객이 없어서 상영이 취소돼 있었다. 극장 측에 강력하게 항의한 뒤 영화를 가까스로 볼 수 있다. 단지 상업적인 논리 때문에 <밀양> 같이 훌륭한 영화가 개봉하자마자 상영이 취소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어도 극장에서 관객과 만날 수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14편의 영화는 6월 27일부터 7월 9일까지 하루에 한 편씩 3번 무료로 상영된다. 티켓 예약은 공식 웹사이트(www.pradatransformer.co.kr)를 통해 가능하다. ‘프라다 트랜스포머’는 영화제를 마친 뒤 8월 16일 세 번째 프로그램 스웨덴의 설치미술작가 나탈리 유르베르그의 전시회 ‘Turn into Me’(턴 인투 미)를 개최한다. ‘프라다 트랜스포머’의 마지막 프로젝트는 서울의 문화를 이야기하는 스페셜 이벤트가 될 예정이다.
트랜스포머?
트랜스포머는 단어 그대로 변형이 가능한 건축물이다. 프라다의 디자인과 렘 쿨하스의 건축이 만난 트랜스포머관은 육각형, 직사각형, 십자형, 원형이라는 4면체로 이루어져 있다. 이 4면체의 건축물은 하나의 행사가 종료될 때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위해 회전한다. 한 행사의 천장이 다음 행사의 바닥이나 벽으로 사용되는 셈이다. 이번 영화제를 위해 트랜스포머의 바닥은 사각형 면으로 바뀌었으며 그 위에는 100여 좌석이 마련돼 있다.
2009년 6월 26일 금요일 | 글_하정민 기자(무비스트)
2009년 6월 26일 금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