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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로맨틱 코미디'를 아느뇨?
브랜단 앤 트루디 | 2001년 7월 2일 월요일 | 조성기 이메일

공허하고 지루한 일상을 멋지게 탈출하는 방법은 역시 '사랑'밖에 없는 것일까? 현란한 액션과 특수효과가 눈을 어지럽게 만드는 SF영화보다, 심장이 얼어붙을 만큼 차가운 금속성의 공포를 맛볼 수 있는 하드 고어 영화보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대다수 연인들에게 더 인기 있는 메뉴라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결국 영화를 통해 사랑의 과정을 점검하고 자신들의 상황을 영화속 가상현실에 대입시켜 좀 더 '로맨틱'한 사랑으로 포장해 보려는 동화심리 욕구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로맨틱 코미디 영화'는 말 그대로 '연인들의 훌륭한 교과서'가 되는 셈. 우리에게는 약간은 생소한 나라, [아버지의 이름으로], [푸줏간 소년] 등 몇 몇 작품을 만들어낸 나라, 아일랜드産 영화 [브랜단 앤 트루디]도 그런 의미에서 철저하게 '연인'들을 위한 영화다.

고지식하고 소심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중학교 교사 브랜단. 그에게 인생의 유일한 즐거움이란 오직 '영화'뿐. 하지만 실제 삶은 너무나도 무미건조해 성가대에서 노래하는 것과 비디오 감상으로 시간을 때우는 게 그에게 의미있는 삶의 전부다. 그런 그의 삶 속으로 재기 발랄한 여인 '트루디'가 방문하면서 그의 인생은 그야말로 '영화'처럼 바뀌기 시작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무료한 일상일 뿐인 그의 삶에 몬테소리 교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트루디는 그러한 멋없는 브랜단의 삶을 시원하게 적셔 줄 단비였던 셈. 하지만 짜릿하고 영화 같은 둘만의 연애에도 불구하고 트루디의 수상쩍은 행동들은 브랜단을 불안에 빠뜨리게 한다. 밤에 나가 새벽녘에야 돌아오는 트루디, 집안의 서랍에는 무지막지한 공구들이 가득하고... 알고 보니 그녀는 남의 물건을 도둑질하는 밤손님이었던 것...

역시 우리에겐 낯선 이름인 월쉬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브랜단이, 낡은 필름 속에 저당잡힌 박제된 자신의 삶을 황당하리만큼 비현실적인 사랑을 시나브로 이뤄가면서 화사한 대낮같은 밝음의 공간으로 이끌어내는 과정을 시종일관 유쾌한 터치로 그려내고 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어머니께 <장 뤽 고다르의 인생>을 선물하고 프랑소아 트뤼포 전집이나 읽는 청교도적인 브랜단과 자유분방하고 대담하기까지한 트루디의 생기발랄함은 어쩐지 철지난 옷처럼 어색하고 잘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오히려 트루디의 거침없는 자유로움이 '목석남' 브랜단의 동면하던 본능을 깨우게 되고 두사람은 꿈결같은 로맨스에 빠진다. 컴퓨터가 유능한 아이들을 망친다고 치부하고 성가대에서 고리타분한 찬송가를 부르며, 자칫 어렵고 지루할 수 있는 흑백영화를 즐기는 영화광 브랜단과 인터넷으로 전송되는 길거리 광고판을 통해 타국의 동생에게 안부를 전하는 괴짜 절도범 트루디의 이 이상한 만남은 사실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일탈 쯤으로 보이며 역시 '로맨틱'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사람의 극단을 오가는 캐릭터와 이들의 톡톡 튕기는 맛깔스런 대사들은 이 작품을 살려주는 강점이며 여기에 덤으로 코미디의 외피까지 두루 갖춘 이 작품은, 소심한 한 소시민의 일상과 그의 내면에 품어진 영화 같은 판타지가 결합하고 충돌하면서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사실 시시콜콜한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를 누가 이처럼 경쾌하고 짜릿하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브랜단 앤 트루디]는 경쾌하면서 심히 발칙(?)한 영화다.

아일랜드를 포함한 영국영화는 캔 로치나 대니 보일 등 감독들의 작품처럼 확실한 색깔과 개성을 갖춘 작품이 많다. [브랜단 앤 트루디]도 그와 같은 영국영화가 지닌 강점의 연장선상에 존재한다. 보통 관객이라면 그야말로 식상해 있을 뻔한 러브스토리 속에 자연스레 난민문제라든가 중산층의 위선, 혹은 과학기술 만능시대에 대한 조롱 등의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더욱이 '생명의 양식'이 유일한 십팔번인 브랜단에게 노령의 교장선생이 가장 반항적 음악이라 할 수 있는 이기팝(iggy pop)을 권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영화를 통해 감독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다.

[브랜단 앤 트루디]가 관객들에게 의외의 재미를 주는 이유가 또 하나있다. 그것은 영화 [선셋대로]의 오프닝을 그대로 차용하는 등 숱한 고전영화들에 대한 패러디들로 가득찬 작품이란 사실이다. 아니, 패러디보다 오마주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지 모른다. 패러디의 사전적 의미가 '진지한 작품의 스타일을 기교적으로 모방하면서 그것을 경쾌하고 익살스런 작품으로 꾸며 야유, 풍자한 것'임을 상기할 때, 빌리 와일더의 [선셋대로]로부터 시작해 [말없는 사나이], [도시의 눈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웨스트], [노틀담의 곱추], [유주얼 서스펙트], [네 멋대로 해라], [추적자], [데드 맨 워킹] 등 이 작품에 차용된 고전들은 야유나 풍자되었다기 보다는 '우회적인 경외심이나 찬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브랜단 앤 트루디]는 극히 낭만적이고 코믹한 드라마지만 정작 시나리오를 맡은 로디 도일의 작품세계는 대부분 고단한 노동계급의 삶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로디 도일이 이 작품의 영감을 얻은 것은 어느날 아침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음악에서 였다고 한다. 그 곡은 존 맥코맥의 '새벽 세 시(Three O'clock in the morning)'라는 노래였는데 도일에겐 낡은 축음기 음악소리가 흡사 빗소리처럼 들리면서 동시에 어떤 한 남자가 고개를 숙인 채 비를 맞는 모습이 떠올랐다고. 바로 빌리 와일더의 [선셋대로] 첫장면과 같았다.

모든 로멘틱 코미디가 그렇듯 [브랜단 앤 트루디]는 진지한 성찰이 담겨있는 위대함(?) 영화를 찾는 관객들에겐 근본적 갈증을 해갈시켜 줄 수는 없는 한없이 가벼운 영화지만 아일랜드식 유머와 해학을 즐기기에 충분한 미덕을 갖춘 소품임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단, 아쉬움이 있다면 브랜단과 트루디의 사소한 갈등 외에는 뚜렷한 갈등구조가 없이 전체적으로 산만한 플롯이라는 점. 하지만 그 외엔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게 즐길 수 있는 '팝콘'같은 작품이 바로 [브랜단 앤 트루디]다. 영화의 말미에 탄산음료처럼 톡 쏘는 듯한 에필로그를 준비한 건 아무래도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월쉬감독 만의 재치가 아닐 듯.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너무 발랄하면 아니함만 못하지 않을까하는 노파심이 생기는 것은 왠일인지?...

4 )
ejin4rang
로맨틱코미디를 아는가   
2008-10-17 08:37
rudesunny
너무 너무 기대됩니다.   
2008-01-21 16:18
kangwondo77
너희가 '로맨틱 코미디'를 아느뇨   
2007-04-27 15:30
ldk209
너무 사랑스러운 영국의 로맨틱 코미디...   
2007-01-29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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