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부는 경극 배우였다. 그는 배우로서 명성을 누렸고, 최고의 명예를 얻었다. 하지만 백부는 광대였다. 광대란 명예를 쌓아 올려도 한 줌 바람에 허물어지기 좋은 운명에 불과했다. “경극배우로 성공해도 멸시를 벗어날 수 없다. 무대를 떠나라.” 백부의 유언장을 읽어 내려가던 어린 원화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연기를 가르칠 선생님이 왔다. 백부는 원화에게 무대를 떠나라 했지만 운명은 원화를 무대 위로 올려 보낸다. <매란방>은 배우로서의 삶을 면치 못했던 어느 한 사람의 운명을 담아내기 위한 그릇이 된 이름이다.
중국의 전설적인 경극 배우 ‘매란방’의 실존적 삶을 영화화했다는 <매란방>은 한 인물의 인생 속에서 격정적인 사건을 추출해 서사적으로 나열한다. 페이드 인과 페이드 아웃의 반복으로 진전되는 상황은 3번의 점프컷을 통해 크게 분할된다. 유년시절 스승으로 모시던 대배우와의 대결, 성장한 매란방(여명)과 맹소동(장쯔이)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미국 진출 이후 일본과의 전쟁에 휘말린 매란방의 역경. 3조각으로 나뉜 서사엔 저마다 극적인 사연이 존재하며 이는 <매란방>이란 스토리텔링을 분할하는 카테고리처럼 질서정연하게 나열된다. 그 중심엔 어김없이 ‘매란방’이 있다. 그러나 그는 사건의 근원이 되는 주체라기 보단 모든 사건에 연루된 객체로서 그 자리를 지킨다. 사건의 배경이 되어 병풍처럼 존재한다.
물론 유년 시절의 서사는 매란방이라는 인물의 기초적인 서사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흥미를 자극한다. 서양연극을 공부했다는 구여백(손홍뢰)은 원화를 만난 뒤 관료직을 버리고 원화의 정신적 지주가 된다. 결국 타성에 젖은 경극 배우들의 전통적 관념에 대항하고자 하는 구여백에게 감화된 매란방은 자신의 스승과 대결을 펼친다. 물론 그 대결의 주체는 매란방이 아니다. 진보적인 구여백과 ‘경극의 대왕(伶界大王)’이라 지칭되던 보수적인 대배우의 대립 안에서 매란방은 승부를 결정짓는 도구로서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 국면 안에서 매란방이 느끼는 정서적 애환이 백부의 유언을 환기시키며 일종의 감흥을 부른다. 대배우의 쓸쓸한 몰락과 이를 지켜보는 매란방의 부채와 자신의 미래에 대한 어떤 예감이 매란방의 감정을 주체적으로 해석하게 만든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매란방>에서 묘사되는 ‘매란방’은 전반적으로 반사율이 낮은 인물이다. 공허하며 한편으로 단조롭다. 인물 자체에 대한 매력을 느낄만한 여지가 많지 않다. 흥미로운 건 매란방의 주변부를 차지하는 서사이며 그 서사에 참여하는 주변인들이다. 씬의 감정을 지배하는 건 대배우이거나 맹소동이거나, 일본군 장교다. <매란방>에서 ‘매란방’은 주체의 위치를 선점하면서도 주체적인 감정을 야기시키지 못한다. 실제 인물의 서사가 그러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적어도 영화상에서는 그렇다.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유년 시절 이후 여명이 연기하는 매란방의 서사가 이에 해당한다. 유년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된 시점부터 매란방이란 인물의 관점은 흐리멍텅해진다.
매란방은 대단한 사연 속에서 감정을 지배하는 역할을 선점하지 못한 채 그저 존재한다. 유년 시절 이후로 나열되는 두 번의 큰 사건 속에서 매란방은 무색무취의 형태로 그저 늙어갈 뿐이다. <매란방>은 주인공을 날려버린 배경 사진과 같다. 그 여백에서 발견되는 이미지나 주변부에서 고조되는 감정에 흥미를 느낀다면 다행이겠지만 매란방에게 흥미를 느낄 수 없는 매란방 이야기라는 점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면 감상 자체가 텅 비는 꼴을 면치 못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찰리 채플린도 영감을 얻었다는 매란방의 실제연기는 확인할 길이 없더라도 경극이 소리를 절제한 무대극으로서 무성영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정도는 가늠할만하다. 그런 한편으로 영화는 매란방의 삶이 관객에게 어떤 영감을 주지 못할 정도로 심심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만든다.
‘매란방’이 <패왕별희>의 데이(장국영)가 연기한 실존인물이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두 인물이 경극배우라는 점에서, <매란방>과 <패왕별희>는 누군가에게 비교하고 싶어지는 영화가 될지 모른다. 물론 그것이 필요한 수순일지는 의문이다. 단지 두 영화가 평행선에 놓기 좋은 비교군의 조건을 지닌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경극을 소재로 한 첸 카이거 감독의 작품이란 공통분모가 선명한 까닭이다. 하지만 단순히 여명과 장국영의 연기력을 비교한다거나 두 작품의 우열을 논한다는 건 사실상 부질없는 일이다. 어떤 면에서 <매란방>은 <패왕별희>보다도 훌륭한 기능적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실존적 재현과 허구적 창작의 너비만큼이나 두 작품은 엄밀히 전혀 다른 이야기다. 애초에 타고난 환경과 천성이 다른 두 인물의 서사에 우열의 잣대를 부여한다는 건 어딘가 무지막지한 태도다.
사실 118분 가량의 상영시간으로 국내에서 개봉될 <매란방>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어떤 면에서 무색한 일처럼 느껴진다. 국내 수입사에서 가위질 했다는 30분의 서사를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첸 카이거 감독의 승인을 얻었다지만 감독 스스로도 편집본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결과물을 놓고 이야기한다는 건 어딘가 무색한 일이다. 실질적으로 영화상에서도 무성의한 편집의 결과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매란방>은 위대한 경극배우, 좀 더 포괄적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던 예술가가 인생과 세월의 풍파 속에서 어떻게 견뎌내는가를 재현하는 드라마다. 30분이 잘려나간 국내개봉판의 모습에서 매란방의 수난이 오버랩된다. 마치 그것은 문화적인 정서나 이해 차이로 경극의 묘미를 느끼지 못하고 이를 멸시하는 타지인들의 무지한 태도와 다름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9년 4월 2일 목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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