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여행을 떠난다. 부부, 연인, 친구, 아니면 혼자서. 각각의 그룹들은 같은 시간에 여행을 하지만 저마다 다른 공간에 머물고, 서로를 알지 못하는 그들은 당연히 마주치거나 알아가지 않는다. 이렇게 <단지 유령일 뿐>은 지극히 개인적인 각 그룹의 이야기이고, 서로 다른 장소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들은 ‘여행의 낯설고 긴장된 순간들’이라는 공통된 감정을 표출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겪으면서 마음속에 무언가가 솟아오름을 감지한다. 그러나 인생에 있어 이러한 여행은 아주 잠깐, 순간일 뿐이다. 그렇기에 뭔가 소용돌이치듯 인생이 바뀌거나 새사람이 되거나 하지 않는다. 그저 조금 느끼고, 생각하고, 담담하게 현실로 돌아갈 뿐이다. 이것은 그들을 바라보는 관객에게도 마찬가지로 던져진다. 감정의 변화를 강요하거나, 구구절절 질문을 통한 스스로의 해답을 내리길 적나라하게 기대하지 않는다. 역시나 담담함. 이것은 이 영화의 시선이자 풍성한 미덕이다.
각각 다른 장소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만큼, 계속적으로 교차되는 여행지의 모습은 기복이 미약한 이야기의 지루함을 걷어낸다. 휴가철에 남들과 똑같이 의례적으로 여행을 떠난 엘렌과 그것에 권태를 느끼는 페릭스 부부가 머문 황량한 미국 서부. 친구사이인 노라와 크리스틴이 머문, 강렬하지만 곧 들이닥칠 허리케인으로 인해 위태로워 보이는 자메이카. 서른 살 생일을 맞아 여행 중인 부모님을 찾아온 마리온이 홀로서기를 위해 선택한 이탈리아 베니스. 막 사랑을 시작한 친구의 호출을 받고 나섰지만, 친구의 남자에게 유혹당하고 마음을 뺏겨버린 카로가 선택한 독일의 젠프텐버그. 그리고 남편 친구 커플의 방문으로 인해 가슴이 두근거리고, 권태와 다른 설레임에 잠 못 이루는 요니나가 살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 아이슬란드. 이렇게 5개의 장소는 서로 다른 뚜렷한 특징을 가지며 내제된 그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가 된다. 권태는 껍데기처럼 황량하고, 폭풍을 기대할 만큼 마음은 불안하고, 모두 다 즐겁고 붐비는 곳에서 더욱 외롭고, 유혹은 뜨겁지만 표현은 극도로 차가우며, 안락함은 지루한 일상이 되는 보통의 현실. 자신의 마음을 닮은 장소에서 잠시나마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여행지에서 흔히 보게 되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단지 유령일 뿐>은 데뷔작, <여름 별장, 그 후>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유디트 헤르만’의 소설 ‘나띵 벗 고스트’를 영화한 작품이다. 지금의 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 세대들의 방황과 모습을 잔잔하게 담아냈다고 평가받았던 소설처럼, 영화 역시 주인공들의 내면 안에 자리한 고민과 불만족스러움, 그리고 쉽사리 분출해 내지 못하는 욕망과 두려움을 담담한 시선으로 화면에 담아낸다. 이것은 각본과 연출을 맡은 ‘마틴 집킨스’의 집중도 높은 연출력과 더불어, 각각의 캐릭터를 잘 살린 배우들의 호연이 있었기에 가능해 보인다.
영화의 깊이를 느끼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상관없어 보이는 각각의 이야기들이 불규칙적으로 배열되는 것이 영화 초반에는 혼란스럽고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안정되면, 인물들의 심리와 이야기의 유기적 흐름 속에 공통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단지 유령일 뿐>이 던지는 담담한 질문에 내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09년 3월 18일 수요일 | 글_김선영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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