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씨, 낫살 먹었으면 나이 값 좀 하시와요. 메롱~~~ ^^” 진중권 교수는 유쾌했다. 극우 정치평론가 지만원이 자신을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소한 것에 대해 검찰이 무혐의 결정을 내리자 이렇게 일갈했다. 이게다 무슨 일이냐고? 지난 11월 한 동안 인터넷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기부천사’ 문근영과 좌익 활동 경력이 있는 그의 외가에 색깔론을 덧씌웠던 지만원 교수. 검찰이 그의 상상력에 가까운 우파적 논리에 조목조목 반박을 가했던 진중권 교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다행히 ‘기부천사’ 문근영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히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문근영과 그의 가족들이 받았어야 할 마음의 상처는 그 누가 보상해 줄 수 있을까. 그러니까 다큐멘터리 <할매꽃>은 여전히 우파에 의한 ‘색깔론’이 잔존하고 있는 대한민국에 대한 가슴 아픈 기록이다. 도대체 왜 할아버지 본인의 이념이 손녀에게까지 덧씌워져야 하는지, 어떻게 지만원은 문근영을 희생양 삼아 또 다시 좌, 우익 논쟁의 불씨를 피울 수 있는지에 대한 연연을 밝혀주고 있는 셈이다.
2005년부터 꾸준히 <송환>을 만든 제작사 푸른영상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문정현 감독은 2007년 완성한 <할매꽃>에서 자신의 외가 마을과 친척들에게 카메라를 향한다. 시작은 정신병을 앓았던 작은 외할아버지다. 어릴 적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던 기이한 행동을 일삼던 그 작은 외할아버지. 그의 30년 분량의 일기를 발견하게 됐을 때, 왜 하루도 빠짐없이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사소한 질문은 감독을 질곡의 한국 현대사의 한 복판으로 이끈다. 바로 ‘빨갱이’로 몰려 고문을 당해 한 평생 후유증과 무기력에 시달리고, 경찰에 살해당하고, 일본으로 망명해 조총련 간부와 재일교포로 살 수밖에 없었던 한 가족의 가슴 아픈 가족사 말이다. 그 중심엔 감독의 외할머니가 자리하고 있다. 어릴 적 한학을 깨우친 ‘배운’ 양가집 규수였지만, 그렇기에 지식인으로서 좌익 활동에 가담한 오빠와 남편을 대신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외할머니. <할매꽃>은 남원의 작은 시골마을이 반상과 좌, 우익으로 갈릴 수밖에 없었던 역사의 아이러니를 친척들, 마을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담담하지만 진실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 중 심금을 울리는 대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우익의 탄압에 못 이겨 자수를 하러가던 길에 경찰에게 살해를 당했던 외할머니의 오빠의 어이없는 죽음이고, 다른 하나는 역시 좌익 활동 중 일본으로 건너가 조총련 간부가 되었던 외할머니의 남동생과 그 자식들이 살아내야 했던 고통의 삶이다. 이 두 사건이 중요한 것은 계급과 이데올로기 갈등이 후대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명증한 증명이기 때문이다. 외할머니의 절친한 친구의 오빠가 즉결 심판을 자행하고, 또 그러한 자책감에 본인이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의 아이러니. 이는 역시 그 경찰의 손녀와 친구였던 감독의 어머니가 과연 가해자와 피해자로 화해를 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집요하게 어머니에게 그 친구를 만나볼 것을 종용하는 문정현 감독의 목소리는 일견 잔인할지 모르지만, 그 질문이 바로 끝나지 않고 순환되는 우리네 역사의 미시적인 통찰과 맞닿아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마치 양반 마을인 상대, 중대와 교회가 들어섰던 상민 마을 풍동 어른들이 여전히 반목하는 것 마냥, 혹은 펜대를 잡은 지만원이 색깔론을 펼치는 것처럼, 또는 군사정권 시절에 막을 내렸을 것 같은 연좌제가 우리 안에 살아 숨쉬고 있는 것과 같은 이념 갈등의 부스러기 말이다.
한편으로 <할매꽃>은 재일교포 아버지와 딸의 내밀한 고백을 통해 잔잔한 감동과 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성찰하게 해줬던 <디어평양>과 맥을 같이 한다. 문정현 감독이 작은 외할아버지의 식구들을 만나러 일본으로 향했을 때, 그가 마주한 것은 조총련과 민단, 다시 말해 북한과 남한 정부의 체제 선전에 희생당했으며, 그러는 사이 자식들과 아내를 내팽겨 치고는 홀로 조용히 죽음을 맞이했던, 이념의 피해자인 작은 외할아버지의 모습이다. 특히나 조총련의 북송사업의 일환으로 여고생이었던 딸을 홀홀 단신 북한으로 보내야했던 일화는 개인이 어떻게 체제에 희생됐는가 하는 점을 직시하게 해 준다.
<할매꽃>은 개발의 논리에, 경제 성장의 논리에 잊고 있었던 그 무엇, 끝나지 않은 이 한반도의 아픔을 가감 없이 조명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혈육이자 한 시대를 고단하게 살아냈던 한 여인에 대한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헌사다.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다큐멘터리는 바로 이런 종류다. 촌로와 40살 먹은 늙은 소를 통해 잠시나마 고단한 도시 생활이나 현재를 잊게 해주는 환영이 아닐지 모른다.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 운파상을 비롯해 제58회 베를린국제영화제와 두바이, 바르샤바 등 각종 국제영화제에 선보인 이 작품이 지금에야 당도한 것은 조금 늦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우리는 아직 <할매꽃>과 같은 다큐멘터리를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미네르바가 구속되고, 용산 참사가 버젓이 자행되는 지금 이 땅에서 말이다.
글_하성태(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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