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영화도 있었고, 800만 영화도 있는데 그 무수한 영화들에 있어서는 수익금도 그렇고 특별한 관심이 없는데 왜 <워낭소리>만 이래야 하는 건지에 대해 감회가 남다르다. 이것도 제작진이 가져가야 할 업보라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

꽤나 억울했다 본다. <워낭소리>의 고영재 PD의 목소리는 차분한 듯 격양돼 보였다. 지난 20일 영화 외적인 잡음을 해명하고자 긴급 기자회견까지 열게 됐으니, 비단 독립영화 뿐 아니라 영화계 전체를 놓고 봐도 이례적인 상황에 봉착한 건 분명해 보였다. 불행히도 악재가 겹쳤다. 전무후무한 독립 다큐멘터리의 흥행인지라 하이에나 같은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더욱이 실화를 넘어선 다큐멘터리인지라 드라마틱한 삶(그러나 다분히 편집된 카메라의 눈으로 걸러진)을 살아낸 주인공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까지 취재의 손길이 뻗쳤다. 그러던 사이 영화는 100만을 돌파했고, 이명박 대통령이 이충렬 감독을 대동하고 영화를 친히 관람을 했으며, 독립영화 마케팅 지원 제도와 시네마테크 사업 공모제 전환에 대한 논란까지 불거졌다. 이 정도면 사면초가가 아닐 수 없다. 영화를 본 관객들의 호평과 입소문에 관객들은 늘어가는 반면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누가 <워낭소리>를 쥐고 흔들고 있는가.

과도한 관심이 불어온 예견된 잡음

일단 1월 15일 개봉한 <워낭소리>는 개봉 첫 주 7개 스크린에서 시작, 독립영화로는 7,500명이란 남부럽지 않은 관객으로 출발했다. 이어 둘째 주 26개로 스크린을 늘리면서 2만 명을 돌파하더니, 가족 단위 관객들이 서서히 찾기 시작한 설 연휴 동안 본격적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2월 1일까지 약 50개의 스크린에서 9만 3천의 관객을 동원했다. 그 이후는 잘 알려진 바다. 한 주 한 주 전국 멀티플렉스까지 진출하며 독립영화 흥행 신기록을 수립해 나갔고, 급기야 개봉 7주차인 24일 현재 140만 관객을 돌파하는 이변을 낳았다. 스크린 수는 무려 276개 관. 800만 관객을 동원한 <과속 스캔들>과 함께 속도는 느리지만 입소문을 타고 관객 수를 늘려가는 또 한편의 화제작이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인기와 관객 수는 언론과 대중들의 관심과 정비례 하는 법. 불황을 이겨낸 할아버지와 소의 이야기는 공중파 9시 뉴스에까지 등장하는 이슈가 됐고, 인터넷과 블로그스피어 또한 연일 관련 리뷰와 ‘몇 만 돌파’와 같은 스포츠 중계식 뉴스들이 하루에도 수십 차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월 3일 고영재 PD는 공식블로그에 ‘언론과 관객들에게 드리는 긴급 호소문’이란 제목의 읍소를 올리기에 이른다. 요약해보자면, 많은 언론사들이 공식적인 루트를 통하지 않고 막무가내 식으로 취재 경쟁을 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주인공 할아버지, 할머니의 일상이 흐트러지고 있다, 영화 상영을 중지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 분들의 일상을 어긋나게 하는 일은 막고 싶다‘는 호소였다.

사실 이충렬 감독은 개봉 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걱정했다. “어휴. <맨발의 기봉이> 전에도 <그 곳에 가면 영자가 산다>는 인간극장이 있었지 않나. 아버지는 피살됐고, 영자는 비구니가 됐고. 그럼 안 된다. ㅈ일보에서 전화 와서 그 쪽에 사진 찍으러 가겠다고 하던데, 왜 이렇게 사람들을 특화시키려고 하는지. 난 <워낭소리>를 찍을 때도 할아버지를 특화시키려고 한 적이 없다. 오랫동안 할아버지를 괴롭혀 드려서 송구하고, 또 한편으로 원죄의식도 있다. 그 분의 삶은 자신의 뜻대로 가야지 구경거리가 되면 안 된다. 그렇게 된다면 모든 원인은 저한테 있는 거다. 아드님에게 부탁한 것도 절대 알려지게 하지 말라, 였다. 그런데 또 모 방송국에서는 벌써 내려갔다 왔다고 하더라.” 우려는 현실이 됐다. <워낭소리> 신드롬이라 불릴 정도로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얻자, 밀려드는 취재 요청은 물론 일반인들의 방문 또한 늘어만 갔고, 영화의 스틸 컷을 통한 광고 제의까지 들어왔다. 이에 관한 결정타는 경상북도가 마련한 ‘봉화 워낭소리’ 코스를 탑재한 ‘2009 경북 주말테마여행’이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사실 이러한 잡음은 다큐멘터리와 허구와의 경계를 오해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다큐멘터리에 있어 영화의 주인공인 마냥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대중들의 욕구까지 탓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제작자가 수십억을 벌게 생겼으니 그 수익금의 몇 퍼센트가 온당히 주인공 노부부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훈계하는 목소리는 말 그대로 어불성설이요, 다큐멘터리의 작동방식에 반하는 무지에 가깝다. 언론의 과도한 관심이 기봉 씨와 영자 씨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다큐멘터리가 리얼하게 있는 현실을 그대로 담았다고 해서, 그 피사체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권리는 우리에게 없다. 이건 어떤 악역을 연기한 배우가 실생활에서 욕을 얻어먹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특히나 그간의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지적받아왔던 이념성이나 관념성을 떨쳐내고 좀 더 친밀한 소재로 다가섰다고 해서, 1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흥행영화라고 해서 다큐멘터리 <워낭소리>의 주인공들이 일상에서 피해를 입는 것은 넌센스에 가깝다. 우리가 이 한 편의 다큐멘터리에 눈물을 흘리고 감동을 받았다고 해서 그들을 스타 취급하는 것 또한 한 마디로 우리의 후진성을 자백하는 꼴이다.

“정말 많이 배웠고 다시 한번 당부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면 팩트이고 제작자의 의지일지 모르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많은 국민들은 아닐 수도 있다. 특히 주인공 노부부에 대해서는 정말 그렇다. 정말 부탁 말씀을 드린다. 다른 건 제기 감내하겠지만, 그 부분은 언급이 안 되고 마무리됐으면 좋겠다.” <워낭소리>는 앞으로 더 많은 관객들이 볼 공산이 크다. 고영재 PD가 걱정하는 잡음은 이제 그만 들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영화를 본 우리가 변할 때 가능하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세상을 따뜻하게 바꾸어 주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 그리고 독립영화

지난 15일 이명박 대통령이 <워낭소리>를 관람했고, 또 그 자리에 이충렬 감독이 동석했다. 역시나 말들이 많다. FTA 반대 시위 장면이 등장하는 <워낭소리>의 취지에 맞지 않는 정책을 펴고 있는, 한마디로 코드와 이상이 맞지 않는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는 퍼포먼스에 동참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것이 비난의 골자다. 사실 보도를 접하고 헛웃음이 먼저 나왔다. 인터뷰 당시에도 자신을 전형적인 386이라고 소개했던 이충렬 감독과 이명박 대통령이 나란히 앉아 있는 사진은 지극히 부자연스러웠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까지 관객이 얼마 들었나” “이전까지 관객이 가장 많았던 독립영화는 얼마나 들어왔나”라고 물었다는 대목에서 실소를 금치 못했다. <워낭소리>와 같은 독립영화에도 역시나 상업영화와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는 단선적인 사고방식이 두려워서다. “교육을 통해 가난의 대물림을 끊으려 했던 것이 우리의 저력이 됐고 외국인도 이에 놀라고 있다”는 독창적인(?) 시각도 놀라웠다. 또 “이번을 계기로 독립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질 것 같다”는 의례적인 덕담보다 “만화영화와 독립영화를 함께 상영하는 전용관을 확충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게 좋겠다”는 생뚱맞은 발상은 어디서 나왔는지도 궁금했다. 개인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관람했을 당시, 자의든 타의든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던 임순례 감독의 강단을 높게 샀었다.

한국독립영화협회와 고영재 PD, 이충렬 감독을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목소리의 저변에는 현 이명박 대통령의 이데올로기와 절대 동거할 수 없는 독립영화인들의 신념이 전제가 되어 있다. 그에 반해 고영재 PD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지지율이 90퍼센트 되는 상황이었으면 완전히 대박 났을 것이다(중략). 독립영화에 대해서 대통령이 됐건, 문화부 장관이 됐건 만나서 말하는 게 무슨 상관이 있나. 당당하게 얘기할 건 얘기하고 자신의 정치적 철학과 소신은 꺾지 않고, 언제든지 정책에 대해서 만날 수 있는 자리는 만나야 되는 거지. 그게 맞다고 본다”는 소신을 밝혔다. 틀리지 않다. 하지만 고영재 PD가 말한 그 소신이 지켜지고, 그날의 자리가 정권의 퍼포먼스에 이용된 것이 아님을 입증하려면 부단한 후속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책임을 통감한다는 고영재 PD가 한독협 게시판에 밝힌 바대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접 건의했다는 ‘독립영화전용관의 필요성 제안’ ‘다양성개봉지원제도 부활’ ‘독립영화제작지원제도 강화’와 같은 산적한 이슈들이 그저 제안에 그쳐선 안 된다. 그렇다면 <워낭소리>의 흥행은 독립영화 전체와는 상관없는 개별 작품의 성공으로 그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워낭소리>에 대한 관심마냥 관객들의 힘이 필요하다. 좀 더 냉철하게 <워낭소리>가 환기시킨 독립영화의 현실과 거꾸로 가고 있는 정부의 대응책을 함께 감시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의 말처럼 “좋은 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어 있다”는 안이한 주인의식(?)은 공염불이나 마찬가지다. 독립영화라는 용어 자체를 다양성영화로 바꾸며 이념적인 그 무엇은 탈색시키려는 꼼수는 물론이요, “독립영화 전용관 사업과 일반 극장의 예술영화 상영 확대 등을 통해 안정적 개봉 환경이 마련됐다”는 이유로 편당 4천만 원에 달하는 독립영화마케팅지원 제도를 폐지하는 이율배반적인 정책 하에서 제2의 <워낭소리>가 나오길 기대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기다. 이번 <워낭소리>의 성공한 것은 바로 멀티플렉스의 가공할 만한 티켓파워다. 그간 독립영화들은 일반 관객들이 발품을 팔아야 하는 아트플러스 체인, 그것도 교차상영이 빈번한 상영 조건에 놓여 있었다. 반면 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적을 받았다는 이유로 시네마테크 전용관 사업을 공모제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권이 바뀌고, 새로운 영진위가 들어서면, 민간에 위탁하는 것도 갈아야 직성이 풀린다는 처사다. 이는 비단 예술영화의 성지인 서울아트시네마 뿐만 아니라 회계연도가 내년으로 되어 있는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까지 걸린 사안이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워낭소리>를 통해 촉발된 독립영화에 대한 자그마한 관심은 지속적인 응원과 감시로 이어져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다면 <워낭소리>의 제작진이 수익금의 30%를 독립영화 발전 기금으로 내놓겠다는 이 웃지 못 할 현실을 계속 개탄해야 할 테니 말이다. 또 다수의 언론들과 호사가들이 온전하게 자신들의 돈을 투자해 만든 영화의 수익금에 신경을 쓰기보다, 정권의 홍보 수단으로 활용됐다고 훈수를 두기보다, 좀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제도적인 극장환경, 그리고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제도적인, 물리적인 지원이 지속되느냐 하는 절박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보도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리라. 같은 맥락에서 “파이를 나누는 것 보다 몇 편의 좋은 작품에 집중해서 지원해야 한다”는 유인촌 장관의 주장은 독립영화계 현실을 모르는 시장주의자의 발상일 뿐이다. 앞으로 시간은 충분하다. 현 정부와 영진위가 시계를 되돌려 놓지 않게 하는 것은 <워낭소리>와 같은 좋은 작품을 알아보고 응원할 수 있는 우리 관객들의 힘에 달렸다. 또 하나, <워낭소리>로 장사 좀 한 언론과 미디어 모두 그간 독립영화에 도외시했던 과거를 반성하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이명박 정부와 제3기 영진위의 임기는 이제 첫 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2009년 2월 27일 금요일 | 글_하성태(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