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려가 <다우트>를 본 지난 주말의 일이다. 극장을 나와 핸드폰을 켜니 몇 개의 부재중 전화가 남겨져있어 시네마테크문제와 관련하여 몇 사람과 통화한 다음, 모르는 전화번호를 눌렀다. KBS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사의 직원이라는 사람이 전화를 받았는데, KBS로부터 외주를 받은 방송콘텐츠 제작업체의 작가 쯤 되는 것 같았다. 용건은 <워낭소리> 열풍에 즈음한 전문가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것.
인터뷰를 요청하는 전화란 것이 대체로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먼저 밝힌 후 인터뷰 목적을 알리면서 가능여부를 묻는 것으로 진행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아무런 이름이나 소속도 밝히지 않은 채 KBS 프로그램 명칭만 알려주며 인터뷰를 부탁해왔다. 게다가 자신이 작성한 원고 내용에 대하여 동의하는지를 먼저 물었다. 크게 잘못된 점이 없다고 여겼기에 대체로 동의한다고 대답했다. 갑작스런 한파가 몰아친 일요일 오후로 인터뷰가 잡혔고 장소는 집에서 가까운 홍대로 정해졌다.
다음날, 약속대로 인터뷰 장소에 나갔고, PD라는 나이 어린 남자가 방송용 카메라를 들고 나타났다. 이 친구 역시 자신의 소속이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본론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오전에는 강남의 극장에서 관객을 취재했고, 독립영화 촬영장을 찾아 독립영화감독의 이야기도 들었다고 했다. 몇 마디 나누자 단박에 독립영화를 거의 보지 않은 사람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 친구가 <워낭소리>도 보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했다. 물론 그는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했다. 정작 재미있는 일은 뒤에 벌어졌다. 그러니까 흥미롭게도 질문과 답변을 동시에 써와서는 내게 “대략 이런 내용이 포함된 말씀을 해주세요.”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전날 통화했던 여자가 내게 물어보고 동의를 구했던 내용과 흡사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워낭소리>를 비롯한 독립영화를 지원해야 하는 이유로, 관객의 문화다양성 요구가 커지고 있으며, 어려운 시대에 감동을 얻고 싶어 하는 대중의 심리를 독립영화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독립영화를 지원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해달란 것이었다. 물론 크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는 문화다양성이라는 말에 담긴 뉘앙스가 맘에 들지 않았다. 독립영화를 지원하는 일이 문화다양성 측면과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자칫 구색 맞추기나 어려운 사람 형편 봐주기, 더 심하게 말하면 불쌍한 놈 떡 나눠주기 쯤으로 가치하락 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뉘앙스가 바뀌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러나 PD라는 친구가 원하는 답을 살짝 틀어 대답하는 것으로 인터뷰를(아주 순식간에) 마쳤다.
예상대로 인터뷰는 편집되었고 방송에 나오지 않았다. 대신 내가 한 말들은 다른 원고와 자막으로 이용되었다. 방송 하루 전 미안하다는 전화가 한 통 왔을 뿐이다. 뭐, 전화까지나. 어차피 당신들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판국에. 물론 그들이 제작한 콘텐츠는 화요일 아침 KBS 텔레비전 아침 프로그램에 방송되었다. 내 대신 문화평론가란 사람이 PD가 내게 요구했던 바로 그 내용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으로 말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독립영화가 한 편 흥행하니까 여기저기서 덩달아 난리다. 독립영화 한 편 본적 없는 사람들까지 독립영화이야기를 해대고, 훈수 두겠다고 설친다. 자신이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 지도 모른 채 에둘러 독립영화의 중요성과 지원을 떠들어대고 있는 형국이다. 아는 게 없으니 콘셉트가 올바를 리 없고 기획단계에서부터 갈팡질팡하니 정작 중요한 것은 모두 수면 아래로 잠겨버리고 만다. <워낭소리>는 이 땅의 방송제작자들이 독립영화에 대하여 얼마나 무지하고 무관심했는지를 단적으로 알려주는 계기가 된 셈이다. 그날 오후 나는 얼음장 같은 몸을 두 팔로 감싸 안고 입버릇처럼 하던 말을 주절거리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기타만 깁슨이면 뭐하나, 손가락이 따라주질 못하는데”
2009년 2월 19일 목요일 | 글_백건영 편집위원(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