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의 남녀가 엎드려서 한껏 귀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순정만화>의 포스터를 보며 한번쯤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에이, 또 무슨 유치한 청춘멜로 하나 만들었구만!’. 영화 <순정만화>는 ‘순정만화’라는 제목부터 시작해서 여기저기 아동적인 느낌이 풍기는 포스터까지 영락없이 청춘 로맨스임을 풍겨준다. 그런데 이 영화, 알고 보면 더 재미있고, 보고나면 꽤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바로 수많은 마니아 팬을 거느린 강풀의 동명만화가 원작이며, 겨울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따뜻한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출근길의 멈춰버린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연히 마주친 위층 여고생의 첫마디, “에이, 조땐네.”. 그리고 그 여고생, 같이 탄 지하철 안에서 대뜸 다가오더니 넥타이를 빌려달란다. 지하철 역부터 동네 여기저기를 다니며 조용히 사진을 찍는 여자가 있다. 그리고 그런 여자를 말없이 따라 다니는 공익근무요원도 있다. 영화 <순정만화>는 순박하고 평범한 네 인물의 범상치 않은 등장과 함께 만화 같은 이야기를 펼쳐 나가기 시작한다. 화 한번 못 낼 것 같은 선한 눈매와 어눌한 말투, 그리고 수줍음까지 많은 30세의 동사무소 직원 선우(유지태), 그런 선우에게 ‘아저씨’라 부르며 때론 철없는 동네꼬마처럼 때론 새침한 여자친구처럼 행동하는 사춘기 여고생 수영(이연희), 사랑의 상처로 마음을 닫아 버린 여자 하경(채정안), 짝사랑하는 하경에게 무작정 자신의 마음을 쏟아 붓는 남자 강숙(강인). 이렇게 각기 다른 개성과 사연을 지닌 네 캐릭터가 바로 영화 <순정만화>의 주인공이다. 영화는 마치 동네에서 한번쯤 보았음직한 이들의 소소한 일상과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로 편안한 즐거움을 던져 준다.
그저 단순한 로맨스만 담겨 있다면 <순정만화>라는 제목이 무색한 통속 멜로드라마로밖에 비쳐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띠동갑인 선우와 수영 커플, 연상연하 커플인 하경과 강숙의 이야기를 흥미로운 에피소드들로 풀어 나가면서 점점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과정을 차분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각기 다른 성격을 지녔지만 그 모습을 통해 서로에게 다른 점을 메꾸어가는 두 커플의 이야기는 그저 그런 사랑이야기라기 보다는 제목처럼 순정만화 속 이야기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띠동갑과 연상연하 커플이라는 흥미로운 설정과 더불어 동사무소 직원, 공익근무요원, 여고생이라는 소소한 일상 속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우리네 이야기’를 통한 풋풋한 사랑이 주는 설렘은 관객들로 하여금 공감대를 형성하게끔 해준다.
무엇보다 허진호 감독의 조감독 출신답게 일상 속 멜로를 따뜻한 감성으로 풀어나갈 줄 아는 류장하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평범한 동네의 모습을 만화 속의 아기자기한 공간으로 그려낸 영상미는 강풀의 원작이 지닌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느낌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원작만화의 캐릭터를 쏙 빼닮은 네 배우의 호연과 그들이 엮어가는 연기 앙상블 역시 영화 <순정만화>를 더욱 훈훈하게 만들어 주는 요소라 할 수 있다. 데뷔 초의 부드럽고 어눌한 순수청년의 이미지로 돌아 온 유지태의 힘을 뺀 연기와 자신만의 트레이드라 해도 무색할 정도로 여고생의 풋풋함을 꾸밈없이 보여준 이연희, 차분한 순정만화 속 캐릭터같은 모습을 보여준 채정안과 첫 연기 도전임에도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소화해 낸 네 연기자들의 연기는 시종일관 얼굴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강풀의 만화는 허영만의 만화와 달리 평범한 캐릭터와 일상속의 사소한 이야기들로 만들어 내는 따뜻한 정서가 매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의 스릴이나 긴장감 보다는 감성을 자극하는 영상과 동화처럼 순수한 이야기가 돋보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순정만화>의 강풀 만화 특유의 따뜻한 정서와 류장하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 네 배우가 펼치는 사랑스러운 연기 앙상블이 더해져 2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을 흐뭇하게 채워준다. 올해 겨울에는 시끌벅적한 블록버스터급 영화들보다는 오랜만에 착하고, 예쁜 영화로 마음을 녹이고픈 관객들이라면 영화 <순정만화>의 감성에 빠져보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2008년 11월 20일 목요일 | 글_김진태 객원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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