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도대체 요 녀석을 어찌하란 말인가. 마음을 사로잡은 것도 모자라 감동까지 보너스 트랙으로 선사한 깜찍한 9살 소년. 혀 안에서 경쾌하게 꼬부라지는 까를리토~스(아드리안 알론소)라는 이름을 가지고, 엄마 찾아 멕시코에서 L.A까지 삼만 리 하는 어린 혈기. 간만에 정말 괜찮은 녀석 만난 것 같아 콩닥거리는 이내 마음 어찌할 바 없다.
멕시코에서 외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까를리토스. 일요일마다 L.A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난 엄마(케이트 델 가스틸로)와의 전화통화가 유일한 희망이자 기쁨이다. 통화마다 엄마가 서있는 곳의 위치를 사진을 보듯 설명해 달라고 조르고, 마지막에 가서는 엄마를 향한 어린 아이의 그리움으로 눈물을 훔친다. 이런 상황에서도 꿋꿋했던 어린 소년은 갑작스런 할머니의 죽음으로 엄마가 있는 L.A에 가기위해 숨 막히는 자동차 뒷좌석 시트 아래 몸을 눕힌다. 시간은 오직 일주일 뿐. 하지만 그의 희망은 엄마와 함께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 어렵듯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진 돈을 전부 잃고 겨우겨우 자신과 같은 이민자들의 도움을 받게 된 소년. 하지만 그는 엄마가 주었던 용기처럼 자신을 어린아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특유의 친근함과 절대긍정 마인드로 어른들의 세상에 들어선다. 우여곡절 끝에 동행하게 된 엔리께 아저씨(유지니오 다베즈)와 엄마를 찾는 여정은 그에게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눈과 이민자로서의 아픔. 그리고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는 희망의 시간으로 변화한다.
<언더 더 쎄임 문>은 멕시코 이민자들의 현실을 담고 있다. 많은 멕시코 인들이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가고 있지만 무사히 국경을 넘는다 하여도 이들의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들은 생활이 어려운 노동자로 전락하여 차별과 노동착취라는 것에 직면하여 살아가고 있고 영화의 장면처럼 100미터 전방에서 들려오는 경찰차 사이렌 소리에도 숨을 죽인다. 처음으로 장편영화를 연출한 ‘파트리샤 리겐’ 감독은 온전하지 못한 이민자들의 현실에 소년과 엄마라는 애틋한 존재를 등장시켜 더욱 쓰린 마음으로 그들을 보게 하고,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통해 아픈 현실을 투명하게 정화시킨다. 그리고 여정을 통해 겪게 되는 소년의 성장은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우리 삶의 희망 통로가 되어준다.
영화는 우리에게 낯선 멕시코 영화를 충분히 대중적인 방식으로 선보인다. 멕시코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총 출동하고, 익숙하지 않았던 멕시코 음악과 소통할 수 있다. 특히 멕시코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밴드인 ‘로스타이거스 델 노테’의 음악과 유쾌한 까메오 출연은 영화에 활기와 웃음을 안겨준다. 여기에 영화 중간 삽입된 ‘슈퍼맨은 불법체류자’라는 노래의 가사는 영주권도, 운전면허증도 없는 슈퍼맨은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당당히 미국에 살지만, 자신들은 인간임에도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을 이야기하며, 흥겹고 중독성 있는 멜로디 안에 그들의 삶이 얼마나 소외되고 있는지를 들려준다. 그리고 이런 모든 것들의 집합은 배우들의 연기력과 결합하여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고 감동적이기까지 한 멕시코 영화가 된다.
영화 제목인 <언더 더 쎄임 문>은 소년과 엄마가 같은 달빛 아래 함께하고 있음을 표현한다. 애처로운 달빛은 그들이 함께 할 수 없던 4년의 시간을 버텨내는 존재이며, 서로의 부재를 위로하고 그리움을 이겨내는 수단이 된다. 그리고 멕시코와 미국의 달이 서로 다르지 않음은, 나아가 멕시코인과 미국인이 인간이라는 틀 속에서 다른 존재가 아님을 일깨운다.
2008년 10월 10일 금요일 | 글_김선영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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