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포르노그라피의 잔다르크 - 애나벨 청
애나벨 청 | 2000년 4월 25일 화요일 | 오상환 기자 이메일

10시간 동안 251명의 남자와 섹스 이벤트를 벌인 화제의 인물 애나벨 청(본명 그레이스 퀙)이 [SEX : 애나벨 청 스토리]의 국내 개봉(4월 29일)을 앞두고 한국을 찾았다. 1999년 선댄스 영화제와 깐느 영화제에서 최고의 센세이션을 일으킨 다큐멘터리 [SEX : 애나벨 청 스토리]를 통해 21세기에 가장 뜨거운 화두로 떠오른 성을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대변인으로서의 입장을 확고히 쌓아가고 있는 애나벨 청은 포르노를 통해 남성 중심의 사회를 전복시키려는 강한 의지의 소유자이다. 옥스포드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했고 남가주 대학에서 여성학을 전공한 그녀가 포르노 여배우로서의 삶에 뛰어든 이유와 그녀가 도전한 릴레이 섹스 이벤트(Gang Bang : 한 여자와 여러 남자가 돌아가며 섹스를 벌이는 것), 그리고 당당함 뒤에 감추어진 여성으로서의 목소리를 진솔한 시각으로 담아낸 [SEX : 애나벨 청 스토리]는 남성 중심의 욕망이 관습적으로 수용되는 사회에 대한 저항을 온몸으로 치열하게 표현하는 애나벨 청의 삶과 성에 관한 생각,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대안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포착한다. 성에 관한 다양한 논의를 이끌어내면서 억압과 도발, 모순의 기제를 돌이켜 보게 만드는 힘이 넘치는 영화 [SEX : 애나벨 청 스토리]는 아마도 새로운 세기에 만나는 가장 논쟁적인 영화가 될 것이다. 논란의 출발점에 서 있는 여성 애나벨 청의 목소리를 통해 그녀의 섹슈얼리티를 탐구해보자!

아시아에서 되찾은 정체성

한국에 오게 되니 흥분이 됩니다. 미국에 머무를 때부터 많은 한국 친구들 덕분에 예전부터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저는 아시아의 한 국가인 싱가포르에서 자랐습니다. 그 후 서양에서 생활하면서 아시아와 서양의 많은 차이를 경험했습니다. 아시아는 여성에게 부당한 짐을 요구합니다. 여성에게 씌워지는 이중적인 잣대가 많은 부담을 끼치는 아시아의 한 국가인 한국에서 미약하게나마 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 기쁩니다. 한가지 우려되는 것은 아시아의 국가에서 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이런 이야기가 수용될 수 있는 그물망이 존재하지만, 불행하게도 아시아에는 성에 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수용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최근 홍콩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를 순회하면서, 나의 정체성에 대해 사고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내가 진정한 동양인인지, 아니면 동양인의 모습을 가진 서양인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많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속은 까맣고, 겉은 하얀 바나나처럼 쓸모없는 이방인은 아닌지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선 Grace Quek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정체성에 관한 고민에 잠길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 주동안 내 자신이 나가야 할 방향이 어떤 것인지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섹스에 대한 밀도 있는 탐구가 필요

오늘이 생애 두 번째의 기자 회견입니다. 많은 기자들을 만나면서 나도 모르게 불안을 느낍니다. 그 이유는 [SEX : 애나벨 청 스토리]가 세계적으로 상상 외의 놀라운 반응을 이끌어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머물면서 섹슈얼리티와 대중문화에 관해 밀도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섹스를 대중문화 안에서 사고하는 방식에 관해 더욱 익숙해지기를 바랍니다. 섹스는 사회적 맥락 안에서 사고되어야 합니다. 섹스는 단순한 유희로서의 관계가 아닌, 힘과 권력의 균형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SEX : 애나벨 청 스토리]의 탄생

내가 10시간 동안 251명의 남자를 상대한 이벤트(The World Biggest Gang Bang)가 있었던 1995년 당시 난 수많은 주목의 시선에 휩싸여야 했습니다. 특히 '제리 스프링어 쇼'는 나의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데 크게 일조했습니다. 이 쇼를 보고 토론토에 살고 있던 고프 루이스 감독이 나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만들 것을 제의했습니다. 그는 3개월동안 끈질긴 설득으로 영화화에 대한 나의 불안을 해소시켜 주었습니다. 그는 애나벨 청이라는 포르노 배우보다는 그레이스 퀙이라는 여성의 삶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만들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동안 포르노가 다큐멘터리속에서 논의된 전례는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센세이셔널리즘에 대한 천착과 편협한 시각 안에서 포르노를 하위문화로 바라보는 시각으로 일관했기 때문에 나 역시 나의 모습과 포르노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랫동안의 고민 끝에 결국 나는 나의 삶이 피사체가 되는 것을 인정했고, 그 후 3년동안 나는 카메라와 더불어 삶을 이끌어 갔습니다. 그리고 1999년 드디어 [SEX : 애나벨 청 스토리]가 공개되었습니다. 이 영화를 계기로 나는 또 한번 주목의 도마 위에 오르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하지만 결코 이 영화가 나의 전부는 아닙니다. 센세이셔널리즘에 주목한 영화는 아니지만, 100%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투영되어 있는 영화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영화는 감독에 의해 재창조되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다큐멘터리조차 감독의 시선을 통해 새로운 각색을 거치게 마련입니다. 이 영화 속에서 나의 진실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만,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모습으로 저를 봐 주시기를 바랍니다.

편견과 오만, 그리고 섹슈얼리티에 대한 논쟁

많은 사람들이 포르노 배우는 머리가 텅 빈 바보, 또는 선정주의가 낳은 희생양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SEX : 애나벨 청 스토리]를 보면서 이런 편견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이런 흑백논리를 접어야 합니다. 이 영화는 결코 이런 흑백논리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여성이 성 산업의 희생양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논쟁적인 영화이기도 합니다.

[SEX : 애나벨 청 스토리]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야한 영화이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코 야한 영화가 아닙니다. 또한 감정의 선을 파고드는 장면들로 인해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의 모습과 생각에 동의할 수도 있고, 동의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좋습니다.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다양한 면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많은 토의가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굳이 거창한 차원에서의 논의가 아니라, 친구들과 단순한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이 영화 속에서 다루어지는 모습들에 대해 잠깐이라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길 바랍니다. 이 영화를 보고 스스로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 영화는 참을성, 수용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SEX : 애나벨 청 스토리]가 공개된 후 가장 나를 불안에 떨게 한 것은 내 자신이 정형화되는 것에 대한 우려였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Gang Bang의 여주인공으로 바라보려 합니다. 하지만 지난 5년동안 나는 진보했습니다. 스크린에 비친 나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애나벨, 다시 포르노를 만나다.

[SEX : 애나벨 청 스토리]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다시 포르노 산업에 뛰어듭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주체가 될 수 없는 배우로서의 입장이 아닌, 감독으로서의 입장으로 포르노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재정적인 입장도 순조롭게 해결되어 영화를 만드는 것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카메라 뒤에 서서 피사체를 확인한다는 것은 정말 기쁜 일입니다. 진정 여성을 위한 성인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성인 영화를 수용하는 여성 층이 날로 확산되어 가는 가운데, 여전히 많은 성인 영화들이 남성 중심적인 성욕을 드러냅니다. 진정 여성에게 큰 만족을 줄 수 있고, 솔직한 시선으로 여성의 성을 담아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처음 포르노 배우가 되었을 당시, 나는 고작 22살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성장하고, 진보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동안 대학을 졸업했고, 영화 제작과 마케팅에 대한 노하우를 익혔습니다. 또한 법학을 전공한 경험을 살려 성인 영화 업계를 보호하려는 시도를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성인 영화 협회 근로단체를 신설하고, 성인 영화에 종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관리와 상담, 재정상태, 계약관계등에서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아직 이 조직이 큰 힘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지만, 차츰 성장해 가면서 조직이 가속화될 것이라 믿습니다.

251명의 기록을 깨뜨린 여자, 쟈스민

쟈스민은 뉴욕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재원입니다. 그녀는 전공을 바탕으로 은행에서 투자 은행가로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은행에서 일하면서 참기 힘든 성희롱에 시달리며 남성 중심의 엘리트 사회에 큰 회의를 느꼈습니다. 스스로 방향을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녀는 성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스스로 뛰어 넘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결국 그녀는 섹스 산업에 뛰어들어 자신이 품고 있던 두려움을 뛰어 넘은 것입니다.

[SEX : 애나벨 청 스토리]에서 쟈스민과 나 사이에 갈등의 기류가 흐르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실제로 우리는 이 분야에서 둘도 없는 친구 사이입니다. 무엇보다도 포르노 업계에서 대학을 나온 몇 안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 우리를 엮는 커다란 끈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녀는 경제학적 시각으로 포르노 업계를 바라보는 반면에, 나는 정체성과 섹슈얼리티의 측면에서 포르노에 접근합니다. 그녀가 추구하는 방식과 전략이 있기 때문에 결코 그녀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매춘부는 강간을 당할 수 없다?

매춘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상당히 큰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서라도 빠른 시일 내에 매춘이 합법화 되어야 합니다. 많은 남성들은 매춘부의 강간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매춘부에게 강간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으로 매춘부의 강간에 대한 조사를 거의 실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매춘부는 돈을 받고 성을 파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강간은 성의 문제가 아니라, 동의의 문제입니다. 모든 여성들은 NO!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매춘부와 포르노 배우의 차이

포르노에서는 여성들이 스타로 군림할 수 있습니다. 포르노는 단지 카메라 앞에서 벌어지는 퍼포먼스에 불과하므로, 맘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멈출 수 있습니다. 또한 스타 시스템이 적용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매춘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결코 'stop!'이라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매춘에서 안전은 쉽게 보장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들이 포르노보다 매춘을 더 선호합니다. 그것은 매춘에 종사할 경우 보장되는 익명성 때문입니다. 반면에 포르노는 모든 것을 그대로 드러내야 합니다. 이것은 퍼포먼스이기 때문입니다.

포르노 배우 애나벨 청 VS. 페미니스트 애나벨 청

251명의 남자를 상대하기 이전에 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습니다. Gang Bang을 통해 나는 공인이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준비가 덜 된 탓에 나의 생활을 잃어가는 것을 바라보아야만 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끝없이 자문하면서 나 스스로를 찾아 가게 되었습니다.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적응기가 필요합니다. 페미니스트로서의 책임 의식 때문에 느끼는 부담감도 있지만, 일정한 책임감을 원합니다. 나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포르노는 계속 존재해야 하는가?

섹스는 우주의 진리입니다. 그리고 포르노는 현실입니다. 결코 포르노는 강제적인 힘에 의해 사라질 수 없습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남성 중심의 포르노에 대한 전복을 이루어내고, 여성 중심의 포르노를 생산해야 합니다. 유해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포르노는 안전한 판타지를 만들어냅니다. 포르노를 수용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매체에 의해 만들어진 판타지의 공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비록 포르노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강간을 일삼는 일부 남성들이 있지만, 소수에 불과한 이런 사람들 때문에 포르노를 건강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돌아가게 할 수는 없습니다. 포르노를 금지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입니다.

251명의 남자를 상대한 이후 달라진 것

1999년 [SEX : 애나벨 청 스토리]가 발표되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에 관해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수많은 언론의 공격에 시달리면서 인식의 공간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알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열린 마음으로 사고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들도 열린 시각으로 [SEX : 애나벨 청 스토리]의 세계에 동참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
soaring2
사진이 너무 보기 민망하네요...;;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죠..   
2005-02-13 23:09
cko27
흠. 열린시각으로 본다면야. ^^ 하지만 아직 한국사회에선.ㅜㅜ부정적인 시각인듯   
2005-02-06 17:59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