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은 도예과 교환교수로 일본에 간 아버지를 따라가 의기양양한 포부를 외치는 민의 얼굴을 화면 가득 클로즈업하며 시작한다. 마치 민의 일본 유람기 쯤으로 예감될만하던 <첫눈>의 첫인상은 갑작스런 청춘남녀의 만남을 통해 첫눈에 반한다는 순정으로 돌변한다. 민의 앞에 나타난 천사 같은 나나에(미야자키 아오이)는 <첫눈>의 이야기적 정체성을 청년 표류기에서 국제 연애사업으로 뒤바꾸며 그의 일생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로맨스의 추억을 만들어 나간다.
매사에 넘치는 활력을 주체하지 못하는 소년과 어지러운 집안 사정의 그림자를 감추고 참한 꿈을 이어나가는 에쁜 소녀. 마치 어디선가 한번쯤은 보았던 쌍팔년도 구식 스토리 라인의 캐릭터 포맷을 구원하는 건 풋풋한 청춘 남녀의 발랄함과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지닌 남녀의 사랑이라는 21세기형 국제 로맨스의 기운이다. 특히나 국제화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지구촌 1일 생활권의 시대에서 이런 컨셉의 이야기는 현실을 반영한 듯한 신선함이 각출된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죽일 놈의 ‘사랑’이 아닌 ‘전형성’이다.
<첫눈>의 문제는 감정에 있다. 물론 전형적인 감정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전형성을 어떻게 살리느냐는 결과적으로 감정의 깊이가 이야기에 스며드는가의 문제다. <첫눈>은 감정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 화면빨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과도한 클로즈업은 절절함 이전에 부담감을 쥐어주고, 인물의 감정을 느끼기 전에 표정을 살피게 한다. 결국 감정의 색채 문제라기 보단 레이아웃(lay-out)의 문제다. 화사한 자연광이 일품인 교토의 경관을 스크린에 화폭처럼 담아내는 배경의 효과는 때로 눈을 현혹시키지만 오히려 그 배경을 압도해야 할 인물들의 감정은 살아나지 않는다. 교토와 서울을 넘나들며 오랜 시간을 사이에 둔 인물의 사랑은 단순히 심정적인 이해가 될 뿐, 어떤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힘들다. 마치 흔해 빠진 뮤직 비디오용 스토리의 극장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무감정의 화면빨이 감동과 무관함은 이미 <사랑따윈 필요없어>에서 한차례 확인된 바 있다.
다만 영화의 의도와 무관하게 언어의 소통이 쉽지 않은 타국인간의 감정을 교류하는 과정은 소소한 재미를 준다.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고 타인에게 마음을 열어주는 일본 청소년들의 진심 어린 커뮤니케이션은 훈훈한 웃음을 부여한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고등학생이라고 최면을 걸기에 이준기의 자태는 너무나도 어른스러워서 어색하다. 풋풋한 미야자키 아오이와 상대되는 이준기는 한일 문화 교류의 프랜차이즈를 구현하기 위한 일환으로 제작된 트렌디 드라마처럼 뻣뻣한 캐스팅으로 느껴질 지경이다.
2007년 10월 30일 화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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